잡지에서 읽은 시

고요의 바다/ 유혜빈

검지 정숙자 2023. 2. 12. 14:42

 

    고요의 바다

 

    유혜빈

 

 

  꿈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만히 누워 잠을 기다리고 있으면 오래된 기억들이 초대를 시작하지 좋은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이미 지나온 길을 거슬러 가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시간의 일이니 유리 조각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따가울 따름이야 그건 당연한 거야 발이 반신창이인데 피는 흐르지 않는 꿈 나 혼자서만 이게 아프구나 할 수 있는 꿈 손톱으로 아무리 긁어도 자국만 남고 흉터는 남지 않는 꿈

 

  너덜너덜한 발로 꿈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두발은 깨끗하겠지 나는 버려지고 쫓기고 두려움에 잠기기도 하며 누군가의 시선 끝에 있기도 하다 내가 들고 있는 사랑이 산산조각 나기도 하고 연인은 하얀 금 바깥에 영원히 서 있을 뿐이다 운이 좋으면 금방 죽임을 당할 수  있다 나는 꿈에서 운 적 없고

 

  잠이 온 것인지 꿈이 온 것인지 나는 모른다

 오랜 꿈의 말로는 바다를 보는 것이었지 푸른 바다가 밑으로 흐르며 햇빛에 빛나고 있는 장면 곧 세상이 바다에 잠긴다고 하던가 약속된 시간에 밀려오기로 한 바다를 바라보는 건 아름답고 다급하고도 평화로운 일이었는데

 

  밤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 몇 개를 끌어안고 가라앉는 배일까

 

  지나간 꿈이 쪽지를 남겼나

 

  나를 보라고 나를 기억하라고 나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이란다

   -시집 『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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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토포스』2022-겨울(창간)호 <아토포스가 선정한 올해의 시> 에서

  * 유혜빈/ 1997년 서울 출생, 2020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