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조각보 田/ 이지호

검지 정숙자 2023. 2. 12. 14:20

 

    조각보 田

 

    이지호

 

 

  뒷산에 올라 정성스럽게 꿰어진 조각보를 본다

  한 조각 한 조각

  단단한 알곡이 한 살림 질펀하게 차렸던 곳

  빈 땅

  조각보가 빈 계절을 덮고 있다

  누군가의 귀가를 기다리는 듯

  바람의 차가운 숨결에 귀 내어 놓는다

 

  밤마다 조각보를 지으며

  한 땀 한 땀

  상침질로 식구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손길

  고왔던 연분홍 한철도 붙어 있고

  뒤뚱거렸던 아이의 지나간 시간이 남아 있는 드레스 한 자락도 붙어 있다

  몸을 거쳐 간 것이 조각보를 만든다

 

  밥상 위에 빈 시간을 덮고 있는 조각보

  불과 몇 시간 전에도 치열했던 밥상이

  휴식에 든 땅처럼

  바람의 발자국 소리라도 앉히려 하지만

  형체가 없는 것들은 머무르는 것을 거부한다

  밖으로 말라가는 희미한 걸음의 귀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저 곳은

  갈색의 단색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무수히 많은 색들이 경쟁하던 곳

  지금은 휴식이나 새참이 있던 곳에

  빈 밥상처럼 나무들이 간혹 서 있을 뿐이다

 

  태산처럼 무거운 질문에 깃털처럼 가벼운 답변같이

  보일 듯 말 듯 덮고 있는 조각보가

  묵묵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전문(p. 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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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토포스』2022-겨울(창간)호 <아토포스 시인들/ 신작시> 에서

  * 이지호/ 201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말끝에 매달린 심장』『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