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호병탁_문제를 없애기 위해 문제를···(발췌)/ 꿈의 번영 : 남현지

검지 정숙자 2023. 2. 4. 02:58

 

    꿈의 번영

 

    남현지

 

 

  꿈에서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구름이나  과자의 관리자는 아니었고

  화단을 관리하지도 않습니다

  길에 떨어진 휴지를 줍지 않습니다

  그것의 관리자가 아니니까 지나쳐서

 

  창문 시트지가 조금씩 떨어진 작은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만 쳐다보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사람들을 관리해요?  꿈인데도?

  근태를 확인하고 파견을 보내고

  목표 달성률을그래프로 만들어서 보고합니다

  등 뒤에 상자가 있어요 상사  뒤에는 또 상사가 있고

  상사가 아주 많이 나오는 꿈이구나

  어제는 야채 장사를 했는데

  손님을 붙잡고 상춧값이 너무 올랐다고 하소연을 했다

  빌어먹을 여름 상추

  우주를 떠돌고 고래가 되는 꿈도 있을 텐데

  오늘은 보고서를 쓰고 있군요

  아무래도 이 꿈이 집착이 좀 있어

  밤마다 번영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개발자 B님이 잠깐 졸다가 다시 성실하게 일을 합니다

  상사가 나타나서 화를 냅니다  문제가 있나요?

  관리자는 기쁘게 되묻습니다

  그래야 해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생성합니다

  문제는 달콤하다 그런데 

  잠을 자지 말라고, 졸지 못하게 하라고?

  하지만 관리자는 그것이 정말 문제라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확신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기계적인지 자랑스러워하며

  관리자로서 이 꿈에 최선을 다해

 

  오늘도 적절하게 실패한 채로 끝납니다

  그게 꿈의 기교라고 납득했던 때로 돌아갈 수있다면

  아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런 꿈이라도 사라지지 않길 바라면서

  눈을 뜨고 뜨거운 아침 햇살을 맞이합니다

  또 늦잠을 잤구나

     -전문-

 

 

  문제를 없애기 위해 문제를 만든다는 강력한 연설 (발췌) _호병탁/ 시인 · 문학평론가

  시인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의 '꿈'을 서술하며 여러 '아이러니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는 현대문학 연구자들이 아주 중시하는 다의미적 언어사용의 문학적 장치로 '모순적 진실'이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표현이어서 그 내재적 의미는 신중한 음미를 통해서 발견된다. 아이러니는 일상적 상식론이나 논리적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나타내는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진술하고 있는 '꿈'에는 말 그대로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이 있고, '청운'의 꿈처럼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을 말하는 꿈이 있고, '헛된 꿈'처럼 '공상적인 허황된 바람'을 뜻하는 꿈도 있다. 이처럼 같은 '꿈'이지만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시인은 이를 정확히 포착하여 여러 놀라운 아이러니들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p. 시 224-225/ 론 237)

 

   ----------------------

  * 『미네르바』2022년 겨울(88)호 <신진 조명/ 신작시/ 작품론> 에서

  * 남현지/ 202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 호병탁/ 시인 · 문학평론가, 시집『칠산주막』, 평론집『나비의 궤적』『일어서는 돌』『양파에서 고구마까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