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경_ 다시, 앵두의 시간들(발췌)/ 앵두 읽기 : 최문자
앵두 읽기
최문자
구름이 앵두나무를 지나가요
나도 지나가요
앵두가 푹푹 익어요
그렇다고 시간을 흰 구름을 나까지 앵두라고 할 수 없어요
나나에게 한 조각 줄 떼어줄 수 없어요
앵두는 위험해요
작아지기 위해서 자꾸 꿈을 꿔요
소년이었다가 사슴이었다가 꿈에서 나와 앵두가 돼요
짙은 빵처럼 보여요
비탈에서 어린 염소가 매애애 매애애 하고 울었지만
나는 앵두를 따먹었어요
피가 묻었어요
동글동글한 몇 개를 더 잃어야 슬픈 주스가 되나요
여름밤은 그래요
뭔가 고조된 마음을 빵처럼 먹어요
붉은 앵두는 잘 읽어져요
-전문-
▶ 다시, 앵두의 시간들(발췌) _윤은경/ 시인
앵두는 '여성 주체'에 대한 일반적인 추상화 혹은 범주화의 산물로서 개념화된 이미지이자, 일종의 관습적이고 사회적인 제도의 폭력을 비유하는 기호가 된다. 특히 "비탈에서 어린 염소가 매애애 매애애" 울고 있다는 표현은 모성적 존재로 본질이 고정되곤 하는 사회적 구조의 폭력을 들여다보게 한다. 시적 주체가 '앵두'를 읽는 행위는 능동적으로 하나의 사건을 창안하는 것과 같다. 사건이란 하나의 사태를 문제화함으로써 '문제적' 조건들을 정의하고 내면에 충격을 가하여 본성상의 변화를 감행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나는것이다. 시인은 "붉은 앵두"를 따먹으며 '앵두'라는 기호와 우발적으로 마주침으로써 '앵두 읽기'라는 사태를 사건화한다. 본래적 존재 의미를 위협당하는 앵두는 위태롭고 위험하다. 앵두의 위험성에 대한 자각은 순종하는 일상적 삶, 비본래적 삶의 방식에 대한 뼈아픈 자기성찰적 각성이자 이를 전복하려는 시적 주체의 강렬한 욕망의 역설적 진술이라 할 수 있다. (p. 시 143/ 론 151)
----------------------
* 『미네르바』2022년 겨울(88)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작품론> 에서
* 최문자/ 1982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과 사이사이 새』『파의 목소리』『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등, 산문집 『사랑은 왜 밖에 서있을까』
* 윤은경/ 1996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벙어리구름』『검은 꽃밭』, 저서『언어의 화엄, 시와 영성』(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