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그는 가을하늘이다 외 1편/ 김순진

검지 정숙자 2023. 2. 1. 02:43

 

    그는 가을하늘이다 외 1편

 

    김순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하늘은 맑고 드높다

  거리마다 지천으로 꽃피고

  새들은 노래하나니 자유여, 너의 뿌리는 무엇인가

  몸을 던져 총성과 포화의 먹구름을 걷어내려 했던 미국 청년

  그가 있었기에 오늘의 하늘은 저토록 푸르다

  오, 그 이름도 거룩하다 윌리엄 해밀턴 쇼

  그는 평양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이미 노르망디 작전에 참전한 예비역 중위

  고향에서 전쟁이 났는데 내가 참전하지 않는다면

  친구들은 나를 비겁자라 할 것이다, 라며

  그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던 스물아홉 살 청년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6.25한국전쟁에 참전한다

  해군의 신문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해 성공을 거두고

  함락된 고향 평양을 되찾겠다며 지상군을 자원했던 청년

  그가 김포평야를 달환하고 치열했던 연희동 104고지전투를 거쳐

  마침내 녹번리 전투에서 전사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오, 눈물 난다

  피로써 지킨 민주주의의 이름 윌리엄 해밀턴 쇼

  우리의 주머니에 평화를 채워준 사람

  우리의 목에 나부끼는 자유의 넥타이를 걸어준 사람

  우리의 지갑에 평생 쓰고도 남을 통행의 자유이용권을 넣어준 사람

  우리는 그를 우러른다

  보라 하늘은 맑고 드높나니

  그가 우리에게 피로써 지켜낸 하늘

  이 세상이 끝난다 해도 그에 대한 감사는 끝나지 않으리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그가 지켜낸 평화는 끝나지 않으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윌리엄 해밀턴 쇼가 선물한 저 맑은 은평의 하늘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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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정과 걱정 사이

 

 

  아이가 슈퍼 앞에서 주워온 박새 새끼 한 마리

  계란 노른자를 반죽해 핀셋으로 떠먹여 위기는 넘겼다

  새끼 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미 새 부부

  밖에 내놓았더니 십 분이 멀다하고 물어다 먹이고 있다

  집안으로 들여놓으면 격정으로 우짖는 어미새

  내놓으면 들고양이한테 잡아먹힐까 봐 보초를 서는 나

 

  계란 노른자위를 떠먹고 자란 듯한 여린 마음이

  고양이발톱 같은 마음에게 상처 받지는 않을까

  제 둥지를 찾아 돌아가야 하는 파랑새는

  이리 격정스럽게 날다 상처를 가질지라도

  나 때문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걱정을 한다. 

     - 전문(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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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더듬이주식회사』에서/ 2020. 1. 20. <문학공원> 펴냄

  * 김순진/ 1984년 시집『광대 이야기』로 등단, 시집『복어화석』『박살이 나도좋을 청춘이여』, 장편소설『너 별똥별 먹어봤니』, 단편소설『윌리엄 해밀턴 쇼』, 수필집『리어카 한 대』『껌을 나눠주던 여인』, 칼럼집『천만에 만만에 콩떡』, 장편동화『태양을 삼킨 고래』, 평론집『자아 5, 희망 5의 적절한 등식』, 시창작이론서『좋은 시를 쓰려면』『효과적인 시창작법』, 문인탐방기『시문학파를 만나다』, 가곡작시악보집『깻잎반찬』, 편저『애인』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