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11월엔 바람소리도 시를 쓴다/ 김명수
검지 정숙자
2023. 1. 24. 02:15
11월엔 바람소리도 시를 쓴다
김명수
가을날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나뭇잎에선
시 읊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 대고 들어보면
바람이 한 묶음 들어있는 것 같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햇살이 빼곡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은행잎 위엔 은행잎만큼
단풍잎 위엔 단풍잎만큼
그리고 참나무잎엔 참나무잎만큼
오늘은 나뭇잎 위에 앉은 바람이
자꾸 시 읊는 소리를 낸다
나뭇잎끼리 속살 부딪는 소리
나뭇잎끼리 깊은 사랑에 빠지는 소리
아 그래 이제 알았다
너희들도 이젠 시를 쓰는구나
흔들리는 만큼
물드는 만큼
서로 사랑하는 만큼
시를 읊는구나
시를 쓰는 11월의 바람소리
11월의 바람소리는 그렇게 시를 쓰는구나
-전문(p. 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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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2-12월(646)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에서
* 김명수/ 충남 당진 출생, 1980~82년『현대시학』추천 완료 등단, 시집 『질경이꽃』『어느 농부의 일기』『여백』『아름다웠다』『11월엔 바람소리도 시를 쓴다』, 동시집『배쑥쑥등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