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두 개의 붉은 사립문이 있는 화령전 외 1편/ 함태숙

검지 정숙자 2023. 1. 19. 02:36

 

    두 개의 붉은 사립문이 있는 화령전 외 1편

 

    함태숙

 

 

  마음이랄 게 한 주먹 봉지 꽃 같다면

  햇살이며 싸락눈이며 가지런히 설켜 있는 하이얀 처마

 

  몸 다 제하고 남은 값이 속 겹 꼭꼭 채운 하룻날 우레에 들었다면

  사랑은 험한 꿈 아니야

  죽음도 흉사가 아니지

 

  선홍 핏물 돌다, 되밟아 다시 오라고,

  그대 어깨에 가난한 꿈을 받치고 비스듬히 서겠네

 

  사계를 가로막고 두 짝 사립문되어 북망에서도 자꾸 물들이겠네

 

  작약이여, 들어오라, 들어오라고

      -전문(p.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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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에서 생각하기

 

 

  어디서 이 간극은 발견된 것일까 

 

  생이 여러번이었다면 가장 단순한 곡선이 되었을 거다

  부피를 삭제한 바다처럼

  깊이란 건 수평의 개념이 되는 거지

  끝없이 길어지는 양팔을 봐

  무릎을 가슴에 싸안듯이

 

  우리는, 우리의 바깥으로 튕겨나가지 않게

  우리의 감옥을 자처하며

 

  하나의 둥근 질량을 얼음과 먼지의 고리로  에워싼

  당혹스러운 아름다움을

  노이로제에 걸린 연인의 눈 속에서 번쩍! 이는 섬광을

  떨어진 부싯돌을 주워 들듯이 이게 맞나? 망설이며 모든

  생애의 허리를 굽히듯이

 

  그때 다시 리셋되는 시계처럼

 

  혼자만의 유일한 설득으로 다시 나를 데려오는

  너는, 다정한 나의 몰락

 

  근접하면 타버리는 표면을 끝까지 다이빙하며

  너는 영혼 속에 어떤 간극을 포함시켰다 네가 사라지며 

  재생되는

 

  사랑의 기술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생활 위로

  폭우가 내린다 미친 듯이 소멸하는 피사체를 따라잡으며

  끝없이 전송하는

  전소하며 내려앉는 음악이 되어

     -전문(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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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토성에서 생각하기』에서/ 2022. 12. 28. <문학의전당> 펴냄

  * 함태숙/ 강원 강릉 출생, 2002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새들은 창천에서 죽다』『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