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뱀술이 익어가는 밤/ 김왕노

검지 정숙자 2023. 1. 18. 02:43

 

    뱀술이 익어가는 밤

 

    김왕노

 

 

  달빛이 연잎 위에 구슬처럼 고이고

  소쩍새 울음 속으로 그리움이 저물어 가는 밤

  어디서 사랑이 발효되어 향기가 휘날리는데

  대추나무 뿌리 근처에 묻은 독사로 담근 뱀술이 익어 간다.

 

  하고 싶은 말, 독 같은 말, 말 못할 사연도 뱀술과 익어

  향기로운 뱀술이 되기를 바라는 꿈이 역린처럼

  돋아나는 밤,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독마저 삭아

  한 병 뱀술이 되어 가므로

  달빛이 어느 밤보다 세상을 더욱 곱게 물들인다.

 

  머지않아 장진주사 부르며 잘 익은 뱀술을 나눌

  죽마고우도

  달빛에 흠뻑 젖어 이 밤에 귀거래사를 읊을 것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적인 독'은 이것도 시가 되는가에서 이것은 시가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으로 변모한다. "독사로 담근 뱀술이 익어" 가는 것처럼 소멸된 생명이 또 다른 생명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변질되는 과정이 아니라 '독사'의 '독'을 향기 나는 사랑'으로 전치시키는 시인의 상상력으로 발효시킨 결과다. 마치 "하고 싶은 말, 독 같은 말, 말 못할 사연도 뱀술과 익어/ 향기로운 뱀술이 되기를 바라는 꿈이" 삭아지길 기다리면서, 비로소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독마저 삭아" 우리를 순간적으로 마취시키는 김왕노 시는 '독'으로 빚은 '술'과 같이 달아오르게 한다. 그것을 위해 시인은 "역린처럼/ 돋아나는 밤"에 "달빛이 어느 밤보다 세상을 더욱 곱게 물들"일, 이미 시의 독이 퍼진 "달빛에 흠뻑 젖어 이 밤"을 건너간다. (p. 시 15/ 론 130-131(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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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백석과 보낸 며칠간』에서/ 2022. 12. 16. <시작> 펴냄

  * 김왕노/ 경북 포항 출생, 1992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중독』『그리운 파란만장』『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등, 디카시집『게릴라』『이별 그 후의 날들』『아담이 온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