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깃털의 암호/ 박분필

검지 정숙자 2023. 1. 17. 02:51

 

    깃털의 암호

 

     박분필

 

 

  얼핏, 갓 구운 빵 색깔 고양이가 어둠 속

  첩보원처럼 사라지는 낌새에

  뒤를 훑어본다

 

  달아나는 놈을 보지 못했다면 몰랐을 흔적

  주말농장에 갈 때마다 어느새 날아와 내 곁을

  맴돌던 하얀 비둘기, 조금 전까지

  여뀌씨를 따먹던 비둘기가 없어졌다 

 

  날카로운 이빨에 마구잡이로 뽑힌 깃털들이

  점점 멀어지는 제 몸뚱이의 온기를

  멀뚱멀뚱 지켜본다

 

  끝이 뾰족한 깃털 펜들, 내가 해독하지 못하는

  복잡 미묘한 언어를 긁적이고 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이 볼 수 있게

  풀잎에 새기는 암호일까

  나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일까

 

  선택할 여지도 없이 요약된 한 생을

  삶과 죽음 사이를 흐르는

  한 여정을 바람의 무리들이 토닥여준다

     -전문(p.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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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2-봄(173)호 <중견 80 · 90년대 시인 신작시> 에서

  * 박분필/ 1996년『시와시학』 시집 출간, 시집『바다의 골목』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