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벌레가 질문하는 밤/ 한이나

검지 정숙자 2023. 1. 16. 03:06

 

    벌레가 질문하는 밤

 

    한이나

 

 

  칸트는 그림자도 없다

 

  시냇가 모래밭과 풀섶을 온통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책 속을 기웃거리고 고개를 젖혀 별을 올려 보아도

  다른 길의 깊이와 높이의 시간이 가늠되지 않았다

 

  지나온 사랑과

  앞으로의 희망에 기대어

 

  몇 백 년 만에 목성과 토성이 달에 가장 까까운 밤

 

  허공이 길을 불러내어, 풍문 속

  사색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벤치에서 책 읽고 있는 그이 동상 옆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도 '실천이성비판' 글자가 또렷이 보였다

 

  나는 누구에게 최고의 선한 삶이었나, 벌레가 질문하는 밤

  별빛들 나를 향해 눈빛을 반짝인다

     -전문(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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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창작』 2022-봄(173)호 <중견 80 · 90년대 시인 신작시> 에서

  * 한이나/ 1994년『현대시학』에 발표, 시집『플로라인 카페에서 쓴 편지』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