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저쪽/ 김은옥
안개의 저쪽
김은옥
안개가 잠 없는 말을 먹어 버린다
입이 먼저 사라지고 귀마저 닫힌다
팔다리까지 뜯어 먹는다
시간의 가로등에 철조망까지 쳐 놓고
도시를 탐색하고 있다
가끔 철조망 사이로 탐조등이 독수리 눈으로 훑고 간다
말 잃고 귀 잃은 눈빛들이
주의 깊게 서행하는 중이다
안개는 점령군이다 권력의 추다
점령군에게 잡아먹히는 몸뚱어리들
지척을 분간하기도 힘든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저 흐린 사물 뒤편에 숨어 있는 눈빛들
불쑥 주먹을 내미는 나무들
발톱을 세우고 물어뜯듯 달려들던
밤샘 노숙에 지친 익명의 그림자들이
안개의 권력을 신문지처럼 덮고 있다
안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해 전진하지만
그 중심을 흐리고 있다는 것을
안개 자신도 모를 것이다
안개의 저쪽이 문득 그립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안개는 우리를 사물로부터 분리하지는 못하지만, 눈을 흐리게 한다. 흐리게 해서 풍경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 시에서 안개는 우리 눈을 흐리게 하고 또 사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우리를 어떤 가치나 판단으로부터도 흐리게 하고 또 그 가치나 판단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기도 한다. 여기에 아침저녁으로 밥 짓는 연기라도 깔리게 되면 그 마을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마을을 떠나 어떤 다른 세계의 입구로 안내하는 느낌이 들게도 한다. 이제 그런 마을은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없다. 안개는 도시화되고 스모그를 동반한 미세먼지와 더불어 불안한 기운으로 다가오곤 한다. 그러나 한편 안개 자욱한 마을이나 들판을 바라보자면 수묵화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아침 해 뜨기 전이나 저녁 해 지기 전, 그리고 밤안개는 한 폭 그림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온갖 색채에 길든 눈을 쉬게 한다. 현대는 기계화와 도시화를 피해갈 수 없다. 안개인지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아니면 스모그인지 불분명한 현상도 수묵화 기법으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p. 시 40-41/ 론 111-112) (조길성/ 시인)
-----------------------------
* 시집 『안개의 저쪽』에서/ 2022. 12. 2. <시작> 펴냄
* 김은옥/ 2009년『수필과비평』으로 수필 부문 & 2015년『시와문화』로 시 부문 등단, 수필집『고도孤島를 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