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장_선천지기의 불꽃, 자연지기의 풀꽃(발췌)/ 나의 어머니 : 유승우
나의 어머니
유승우
나의 어머니는 내가 열두 살이던
1950년 음력 8월 21일 새벽에
후퇴하던 공산당에게 끌려가
학살당했다. 형수와 누님도 함께였다
이날이 양력으로는 10월 2일이니
서울은 이미 수복된 뒤였다
아버지는 1948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참말로 고아가 되었다
내가 고아가 되다니 부끄러워서
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시는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
고아라는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집안에서 혼자 울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끄러움은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다시
캄캄한 어둠이 되어 나는 밤마다
어머니 무덤 앞에서 바위처럼
울음을 삼켰다
울어도 울어도 소용없었다
바위보다 더 어쩔 수 없는 아득함
삶과 죽음의 절대 거리
이젠 어머니의 모습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에겐 어머니의 사진도 한 장 없다
어머니의 제삿날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그런데 1999년 6월 25일에
어느 텔레비전에서 6.25의 노래가 들려왔을 때
내 가슴 속에 50년 동안 엎드려있던
바위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오래오래 울고 있었다
-전문-
▶선천지기先天之氣의 불꽃, 자연지기自然之氣의 풀꽃/ 시인 유승우를 말하다(발췌)_ 이오장/ 시인 · 문학평론가
강원도 춘성군 남면 방하리 56번지 즉 유원지로 유명한 남이섬이 있는 북한강가의 산골 마을에서 1939년 4월 17일에 태어났다. 본명은 유윤식으로 어린 시절은 부족함이 없는 작은 지주의 부농이었으나 가정불화를 겪으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를 대신해 형 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후처로서 이미 장성한 전처의 소생들이 있어 시집살이의 고난은 유별났고 거기에 아버지마저 10살 때 여의게 되어 많은 고난을 겪어가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를 4학년에 입학하게 되어 뒤처진 학습을 따라가느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고 5학년에 올라가면서 6.25동란을 맞게 된다. 이미 장년이 된 형은 사명감이 투철하여 공산당원에 저항하다 산으로 피신하고 어머니를 비롯하여 남은 가족은 서울 수복 후에 퇴각하는 공산당원에게 학살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그때, 어서 피하라는 어머니의 눈짓이 평생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 아픔을 품고 살게 된다. 총으로 사살된 게 아니라 죽창으로 찔려 죽은 가족과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한 어리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것뿐이 아니라 1·4후퇴 때 공습에 나선 전투기의 포화 속에서 돌봐주던 이웃이 참변을 당하는 것을 목격함과 동시에 자신도 휩쓸려 왼팔 일부를 잃게 된다. 팔을 잃은 것도 모른 채 기절했다가 누님의 도움으로 깨어나 이웃의 주선으로 외국병원 군의대에서 팔을 치료했으나 출혈이 심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때부터의 삶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역경은 계속되어 함께 살던 조카들의 죽음과 생활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친인의 죽음과 이웃의 죽음, 참혹한 장면까지 목격해야만 했으니, 출혈이 심하여 생의 고비를 겨우 넘긴 어린이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말문이 막힐 일이다. 이러한 참변을 겪고 살아난 것은 선천지기가 강했기 떄문이다. 선천지기 즉 성령의 은총이 삶을 유지하게 한 것이다. 기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유승우 시인은 성령을 토대로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일찍부터 터득한 것이다. 참혹한 체험 속에서도 원망도 좌절도 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은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연에 순응하지 못했다면 지극히 온순하고 만사에 감사하는 성격은 절대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p. 시 252-253/ 론 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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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문학』 2023-상반기(15)호 <문학 평론> 에서
* 유승우(본명, 유윤식)/ 1939년 강원 춘성 출생, 1969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에는 뼈가 없습니다』『바람 변주곡』 등, 연구서『한글 시론』등, 현) 인천대 명예교수
* 이오장/ 1953년 전북 김제 출생, 2000년『믿음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왕릉』『고라실의 안과 밖』『천관녀의 달』등, 동시집『서쪽에서 해 뜬 날』외, 평론집『언어의 광합성 창의적 언어』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