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인왕 6 외 1편/ 김선미

검지 정숙자 2023. 1. 4. 01:34

 

    인왕 6 외 1편

      - 앙케혼수

 

    김선미

 

 

  삼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왔구나

  너라는 사제를 만나러 나는 나비로 벌로 하루살이로도 변해 간다

  명동교자 먹으러 간다

  만지면 바사삭 부서질 너를 데리고

  긴 줄 끝에 서서

  내일은 을지로 평양냉면도 먹고

  한강변 꽃 진 자리 열매도 떨어진 벚나무 아래 누워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쏘아보다가

  웃고 있는 해골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놓인 뼈 없는 닭 다리를 먹으며 한나절을 놀다가

  만지지도 못하는 너를 바짝 마른 너를 살살 달래 가며 

  몸을 섞고

  아침이면 부서진 너를 추슬러 손을 잡고 길을 떠나는구나 너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배고 이승의 나에게로 와 바이러스 시대의 사랑 운운하는구나

  꿈을 생산하느라 잠의 가장자리에 눈꺼풀이 떨리는 오후

     -전문(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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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이 된다

 

 

  복희 집으로 와 모자를 쓰고 와도 좋고

  뭐든 뭉치는 게 좋아 아랫배든 발가락이든

  구름이든

  뭉치고 나면 끔틀거리잖아

  상훈 씨는 갑자기 왜 죽었대 내게 이상형이라고 하더니

  하루는 비쩍 말라 왔더라

  우주 영화 더 마션을 보자고 하더라고 그 영화 있잖아 우주 탐사 중 혼자 고립된 사람이 감자를 재배하고 산소도 만들고 겨우 살아가던

  그 사람이 먼지처럼 사라질 거 같았어

  그래서 같이 봤지

  그리고 지하철 타고 가 버렸어

 

  그러니까 복희 집으로 와 먼지도 털지 말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와 눈이 오면 눈을 맞고 안 되면

  서로 귀를 물어뜯으며 있어 보자고

  저 별들이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아 반짝거리고 있을 때까지 꿈틀거리고 있어 보자고

  그러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사당동 지날 때마다

  손이라도 몽땅 줄 걸 그랬나, 죽을 때까지 조용히 혼자 살다 가던 사람을

  기침 소리도 크게 내지 않던 사람이

  이젠 내 속에서 종일 걸어 다녀

  너도 누구한테든 이상형이라고 하지 마

    -전문(p. 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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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인왕』에서/  2023. 1. 3. <파란> 펴냄

  * 김선미2009년『시에』로 등단, 시집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