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 6 외 1편/ 김선미
인왕 6 외 1편
- 앙케혼수
김선미
삼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왔구나
너라는 사제를 만나러 나는 나비로 벌로 하루살이로도 변해 간다
명동교자 먹으러 간다
만지면 바사삭 부서질 너를 데리고
긴 줄 끝에 서서
내일은 을지로 평양냉면도 먹고
한강변 꽃 진 자리 열매도 떨어진 벚나무 아래 누워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쏘아보다가
웃고 있는 해골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놓인 뼈 없는 닭 다리를 먹으며 한나절을 놀다가
만지지도 못하는 너를 바짝 마른 너를 살살 달래 가며
몸을 섞고
아침이면 부서진 너를 추슬러 손을 잡고 길을 떠나는구나 너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배고 이승의 나에게로 와 바이러스 시대의 사랑 운운하는구나
꿈을 생산하느라 잠의 가장자리에 눈꺼풀이 떨리는 오후
-전문(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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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된다
복희 집으로 와 모자를 쓰고 와도 좋고
뭐든 뭉치는 게 좋아 아랫배든 발가락이든
구름이든
뭉치고 나면 끔틀거리잖아
상훈 씨는 갑자기 왜 죽었대 내게 이상형이라고 하더니
하루는 비쩍 말라 왔더라
우주 영화 더 마션을 보자고 하더라고 그 영화 있잖아 우주 탐사 중 혼자 고립된 사람이 감자를 재배하고 산소도 만들고 겨우 살아가던
그 사람이 먼지처럼 사라질 거 같았어
그래서 같이 봤지
그리고 지하철 타고 가 버렸어
그러니까 복희 집으로 와 먼지도 털지 말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와 눈이 오면 눈을 맞고 안 되면
서로 귀를 물어뜯으며 있어 보자고
저 별들이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아 반짝거리고 있을 때까지 꿈틀거리고 있어 보자고
그러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사당동 지날 때마다
손이라도 몽땅 줄 걸 그랬나, 죽을 때까지 조용히 혼자 살다 가던 사람을
기침 소리도 크게 내지 않던 사람이
이젠 내 속에서 종일 걸어 다녀
너도 누구한테든 이상형이라고 하지 마
-전문(p. 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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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인왕』에서/ 2023. 1. 3. <파란> 펴냄
* 김선미/ 2009년『시에』로 등단, 시집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