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앨범 7 외 1편/ 김상미
시인 앨범 7 외 1편
김상미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
그 시를 읽으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시를 쓰고 싶다
아니다, 모두가 다 읽는 시를 쓰고 싶다
그 시를 읽으면 죽어가던 것들도 생생히 되살아나는 시를 쓰고 싶다
꿈 같은 일이다
아무리 좋은 시에 발 동동 굴리며, 간절히 원하고, 주먹을 쥐고,
훔치고, 질투하고, 탐하고, 절망하고, 애를 써도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그런 시를 쓰지 못하고
이 시도 저 시도 다 쓰레기 같아
활활 타오르는 시어들의 모닥불 속에 모두 던져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대로 입히고 먹여줄 게 시밖에 없어
뜬구름 잡듯 또다시 펜을 집어든다
이 우주에서 시 아닌 것 있으면 나와보라고
절망에 눈이 먼 채로 큰소리치며
돈키호테가 풍차를 들이박듯 용감하게
있는 대로 아드레날린을 발기시키며
허기지고 굶주린 시 속으로
미치고 미치다 꺼꾸러진 희디흰 뼛가루
그 위에 던져진 한 떨기 백합처럼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을 시 속으로
-전문(p.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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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버섯 요리를 하며
춥다. 한겨울 날씨는 살을 엔다. 이런 날은 버섯 요리를 하자. 어제 칡은 책*에 적힌 그대로 큰갓버섯 요리를 하자. 젊음을 모르는 큰갓버섯. 하얀 털모자를 쓰고 땅에서 올라오지만, 땅속에서 이미 늙어버려 땅 위에선 노파로 살아야 하는 큰갓버섯을 다듬으며 나는 내가 아는 버섯 이름들을 생각나는 대로 소환해본다.
거친껄껄이그물버섯, 구릿빛무당버섯, 구름버섯, 꾀꼬리버섯, 노루궁뎅이버섯, 어린말불버섯, 깔때기무당버섯, 웃음버섯, 주사위환각버섯, 냄새무당버섯, 구멍장이버섯, 알광대버섯, 독우산광대버섯······
하나같이 이름들이 희한하게 재미있고 자연 친화적이다. 그중 광대버섯, 독버섯 중에서도 가장 독종인 광대버섯을 맛나게 요리해 먹는 여자 둘을 만났다. 어제 읽은 책에서. 죽음의 모자. 파괴의 천사라 불리는 그 독버섯을 먹고도 죽지 않는 여자들. 그들은 마녀일까? 성녀일까? 그들과 사귀고 싶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열에 들떠 책을 끌어안았다. 치명적 독을 능가하는 여자들. 한겨울 날씨처럼 아름다운 여자들. 순수한 독. 그 순수한 어둠과 빛을 온몸으로 다 소화해내는 여자들. 에밀리 디킨슨의 시 같은 여자들.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들. 나는 그 가까이에도 못 가봤지만, 그래도 정말 그들과 사귀고 싶다! 눈 덮인 한겨울, 깊고 깊은 산 적막 같은 여자들, 그들처럼 나도 독버섯을 먹고 그들 곁에 나란히 누워 꿈꾸듯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리다 잠들고 싶다.
남십자성과 기울어진 국자, 전갈과 도마뱀, 거꾸로 선 게와 사냥개, 안드로메다와 카시오페이아, 물고기와 처녀, 페가스스와 작은곰, 오리온과 엎질러진 물병,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전문(p. 24-25)
*올가 토카르추크, 『낮의 집, 밤의 집』, 이옥진 옮김, 민음사-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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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에서/ 2022. 12. 2. <문학동네> 펴냄
* 김상미/ 1900년『작가세계』 로 등단,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