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폭풍/ 문은성
< 2022, 하반기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수상작> 中
마지막 폭풍
문은성
도시에 밤이 닥쳐온다
이 깊은 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티브이 볼륨을 높이고 칼을 쥔 채
푸른 사과를 깎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과를 깎다가 깊고 푸른
사과를 먹다가
세상 모든 사과를 놓치고
그저 작은 칼 하나를 쥔 채 잠에 빠지는 법을
나 여기에 있어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속수무책으로
고대하고 무서운 밤의 정강이뼈에
명치를 짓눌리며
불투명한 사과
불확실한 사과
죽음과 결핍을 이기려는 힘으로
나는 한 조각의 사과를 씹고
반짝이는 칼날의 힘을 두 손에 품는다
고요하고 힘센 밤의 폭력을 견디다
마침내 혀끝에 남은 마지막
달고 진한 과일 향이 퍼질 때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던 나의 감각이
툭,
하고 풀려나오며
죽은 나의 사지를 깨우는 걸 봐
밤의 폭풍 한가운데
살아 있는
마지막 감각 하나
수십 개의 사과가 한꺼번에
내 손에서 굴러떨어지고
모든 칼날을 놓칠 때
비로소 밤은 내 온몸을 와락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두운 도시,
뜨거운 공기 속에 붕 떠 있는
죽은 몸 하나
흩어져 반짝이는 칼날들
- 전문 (p. 126-127)
* 심사위원: 원구식 오형엽 김언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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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2022-10월(394)호 <2022 하반기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에서
* 문은성/ 1995년 광주 광역시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