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마지막 폭풍/ 문은성

검지 정숙자 2022. 11. 22. 01:38

< 2022, 하반기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수상작> 中 

 

    마지막 폭풍

 

    문은성

 

 

  도시에 밤이 닥쳐온다

  이 깊은 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티브이 볼륨을 높이고 칼을 쥔 채

  푸른 사과를 깎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과를 깎다가 깊고 푸른

  사과를 먹다가

  세상 모든 사과를 놓치고

  그저 작은 칼 하나를 쥔 채 잠에 빠지는 법을

 

  나 여기에 있어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속수무책으로

  고대하고 무서운 밤의 정강이뼈에

  명치를 짓눌리며

 

  불투명한 사과

  불확실한 사과

  죽음과 결핍을 이기려는 힘으로

  나는 한 조각의 사과를 씹고

  반짝이는 칼날의 힘을 두 손에 품는다

  고요하고 힘센 밤의 폭력을 견디다

  마침내 혀끝에 남은 마지막

  달고 진한 과일 향이 퍼질 때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던 나의 감각이

  툭,

  하고 풀려나오며

  죽은 나의 사지를 깨우는 걸 봐

  밤의 폭풍 한가운데

  살아 있는

  마지막 감각 하나

 

  수십 개의 사과가 한꺼번에

  내 손에서 굴러떨어지고

  모든 칼날을 놓칠 때

 

  비로소 밤은 내 온몸을 와락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어두운 도시,

  뜨거운 공기 속에 붕 떠 있는

  죽은 몸 하나

  흩어져 반짝이는 칼날들

    - 전문 (p. 126-127)

 

    * 심사위원: 원구식  오형엽  김언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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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10월(394)호 <2022 하반기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에서 

   * 문은성/ 1995년 광주 광역시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