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내가 사랑하는 우리말 우리글/ 어머니 : 오세영

검지 정숙자 2022. 11. 16. 01:37

 

    어머니

 

    오세영/ 시인

 

 

  어느 때 어느 장소든 한번 부르면 애절하고, 안타깝고, 사무치는 그 아름다운 우리말, 어머니! 이 세상의 수많은 어휘들 가운데 오직 한국어로 부르는 그 '어머니'라는 말보다 더 순결하고 사랑스러운 말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민족어에서 '어머니'라는 말은 모두 'ㅁ(m)'음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양순음(兩脣音bilabial)인 이 'ㅁ(m)'이, 다물었던 두 입술을 펴기만 해도 쉽게 낼 수 있는 소리여서 그 어느 나라 민족이든 갓 태어난 유아가 생애 처음 발성하는 음운이 바로 이 음운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말이 'ㅂ(b)'이나 'ㅍ(p 혹은 f)'으로 시작되는 이치 또한 같다. 다만 동일한 양순음들이지만 '아버지'는 남성인 까닭에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소리 무성음(ㅂ,ㅍ)을, 어머니는 여성인 까닭에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소리 유성음(ㅁ)을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어머니'는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 'ㅁ'을 음성모음 'ㅓ'와 결합시켜 '어머니' 혹은 '엄마'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어의 'mam, 프랑스어의 'maman', 스페인어의 'mama', 독일어의 'mama' 등이 이 모두 'ㅁ'에 양성모음 'ㅏ(a)'를 결합시켜 만든 것과는 사뭇 다른 조어법이다. 음양의 이치로 볼 때 음성모음은 하늘을 상징하는 양성모음과 달리 땅을 상징하는 소리이니 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조화인가.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어 '어머니'는 단순히 어머니라는 뜻만을 전달하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음양의 세계관에 토대한 우주창생과 천지조화의 심오한 철리가 반영된 단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누군가가 어떤 위급하고도 절박한 상황에 직면할 때 서구인들이 "오 마이 갓(오, 신이시여)!"을 외치는 것에 반해 우리 한국인들이    대신   '어머니!' '아이그머니!', '어머나!' 하고 어머니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 (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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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2-9월(252)호 <내가 사랑하는 우리말 우리글> 에서 

  * 오세영/ 시인,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