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불면 외 1편/ 이진옥

검지 정숙자 2022. 11. 14. 01:08

 

  불면 외 1편

 

  이진옥

 

 

달빛이 누웠다 간 자리에

햇빛이 걸터앉을 때까지도

사내는 허공에 자신의 눈을 걸어 놓았다

베개 위에는 나는 전생에 새였거나 새였다라고 쓰여

있다

 

21층 아파트에서 아침을 맞은 사내의 이마에 붙은

굳은 잠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사내의 흰 손목에 푸른 정맥이 넝쿨 식물처럼 부풀어

올랐다

정맥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베란다를 거쳐 지상에

닿았다

사내는 날지 않아도 추락하지 않아도

지상에 닿는 방법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전생이 새였다라고 굳게 있는 사내는

지상에 닿는 것도 하늘을 나는 것도

날갯짓이어야만 한다고

아니면 차라리 추락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정맥에서 돋은 넝쿨을 자르며 생각한다

 

넝쿨을 자르면 날개가 돋을까

날개가 돋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날 수 있을까

 

오늘 밤도 사내의 잠은 허공에 걸려

푸른 정맥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 전문 (p.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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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이라 읽어주세요

 

 

    내가 달을 살해했습니다

 

충혈된 눈으로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弔辭를 면죄부

라 하지 않겠습니다 

 

 

동쪽에서 떨어져 채 여물지 못한 머리가 한쪽으로 찌

그러져 있습니다

입꼬리를 비틀고 노랗게 웃습니다

살해당한 것의 웃음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환한 거리마다 달의 부고를 알리는 등불을 내걸었습

니다

하지만 누구도 달의 부재 같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

니다

 

토끼를 잉태하다니, 달은 제 안의 돌연변이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축축한 양수에 싸여 명랑하게 떡방아를 찧는 토끼를

응원하느라

사람들이 자꾸만 달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살해당한 달 안에 토끼는 없었습니다

 

    내가 달을 살해 했습니다

어둠이 있어야 완성되는 (  )이 (  )해서

달이 제 눈 찔러 어둠 얻기 전에

        - 전문 (p.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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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불안)이라 읽어주세요』에서/ 2022. 10. 28. <예술가> 펴냄

* 이진옥/ 경북 안동 출생, 2010년 『예술가』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