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햄릿의 은하/ 김진숙

검지 정숙자 2022. 11. 8. 00:36

 

    햄릿의 은하

 

    김진숙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은하죠

  사랑하고 충돌하며 혼돈 속에서 유빙처럼 떠돕니다

 

  이제는 어둠과 싸우던 장미가 죽었고

  하얀 겨울은 붉은 실로 묶였습니다

 

  외로운 영혼들이 흐르는 은하에 빛이 고입니다

  태양이 지구 반대 방향으로 멀어졌을 때

  골목길에서 붕어빵을 굽던 한 사내가 죽었고

  원룸에서 시를 쓰던 시인이 술잔 속으로 쓰러졌습니다

 

  누가 술이 든 술잔을 치우고 진짜 독배를 준비했을까 햄릿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충돌한 결과일까요

  이 세상을 햄릿의 은하라 부르면 지나칠까요

 

  다른 무대가 펼쳐지고 독이 없는 술잔이 준비된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아픈 궤도를 벗어날 수 있을지

  새롭게 태어나는 햄릿을 위하여

  우리들의 빛나는 은하를 위하여

 

  상자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어린 왕자를 만나러 갑니다

  책장을 넘기면 보이지 않는 별에서 아이의 향기가 피어나고

  별이 뜨는 방향으로

  다시, 독배에서 장미가 깨어납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위 시에서 시인이 "햄릿"을 호명한 이유 또한 존재의 의미를 고뇌하는 단적인 인물이 문학작품 속 "햄릿"으로 여긴 때문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햄릿"은 작품 속에 머물지 않고, 작품 밖으로 걸어 나와 "골목길에서 붕어빵을 굽던 한 사내로" 혹은 "원룸에서 시를 쓰던 시인"으로 새로 호명된다. 그들은 마치 "독배"를 든 불운한 인물로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했지만, 시인의 시에서는 "은하"로 닿아, 결코 무심하게 소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장미"로 다시 탄생한다. "장미"는 "어린 왕자"의 행성 B612(궁극적으로는 은하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에서 새로운 생명성을 부여받는다. 장미는 "별이 뜨는 방향"으로 새로 태어난 생명을 지칭한다. 은하의 무수한 별들은 "어린 왕자"가 행성에서 키운 '어린 왕자의 장미'를 연상시킨다. 다만,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세계 밖의 세계인 "은하"가 새로이 펼쳐진다. (p. 시 50-51/ 론 121-122) (전해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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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햄릿의 은하』에서/ 2022. 9. 21. <상상인> 펴냄

  * 김진숙/  2011년『문학시대』로 등단, 시집『나를 연주하는 나무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