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정박(碇泊)/ 이동희
검지 정숙자
2022. 11. 3. 02:46
정박碇泊
이동희
이제는
바닷바람에 찢긴 돛을 거두고
네가 나의 염려 안에 닻을 내려야 한다
참 무던한 항해였구나
거친 파도보다 더 거칠었음으로 거쳐 오지 않았던가
절망도 깊어지면 검푸른 수심이 되는 줄
함부로 명패를 달지 않았을망정
빛바랜 청춘에게도 영혼은 푸르다
없던 길이 길을 만들어
마침내, 어둠도 별빛을 만나 마중 받지 않던가
그러므로 무슨 꿈인들 날개를 접지 못하랴
작은 배 곁에서 작은 숨을 쉬듯이
波浪도 반역도 없는 해저로부터
잠들어도 좋을 휴식은 출렁임으로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발이 묶인 항로는
갈맷빛 날개를 펴서 수심 깊은 바다가 될 것이다
푸른 영혼을 호흡할 것이다
네가 나의 걱정 안에 닻을 내리는 동안
작은 배가 숨을 고른다
이제는
-전문 (p. 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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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2-10월(644)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_이동희/ 대표작 5편> 中
* 이동희/ 1946년 전북 전주 출생, 『心象』으로등단, 시집『빛더듬이』등 9권, 수상록, 시해설집, 문학평론집『문학의 두얼굴』등 11권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