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禪文答) 외 1편/ 김주혜
선문답禪文答 외 1편
김주혜
어느 날, 잠자리는 다섯 살 꼬마에게 꽁지가 잘린 채 어릴 때 떠난
물가로 돌아왔습니다. 빛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하던 투명한 날개는
찢겨져 그늘져 내리고, 늘어진 머리에 달린 커다란 눈망울은 그렁그렁
젖어 있습니다. 빠른 비행술과 날렵한 몸, 홑눈에 2만 8천 개의 겹눈
까지 갖추고도 날개 한 번 접어보지 못한 채 꼬마 손끝에 잡힌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
잠자리는 나에게, 나는 잠자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전문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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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나 비비안나
태초에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울을 바오로라고 부르시어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 태어나라 하셨다
어처구니없게도 여배우 비비안리와 비슷한 이름
비비안나로 선택한 내 신앙은
그 성인 이름에 부합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비비안나 성인이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신앙을 지킨 그 정결한 삶을 본받고 있는지
두렵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분에게
영적인 삶으로 영원히 살아가겠노라는 소명,
그 크신 뜻과 막연한 약속을 스스로 깨닫고 있는지
무릎 꿇고 두 손 모아본다
생각해보니, 내 모든 신앙은 성전 안,
같은 생각, 지지하는 익숙한 감정 안에서만 이루어진
부끄러운 신앙 행위였음을 고백한다
성전 밖에서도 나는 신앙인인가
성전 밖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비비안나 그 성인의 이름으로 변화된
진정한 신앙인의 길은 무엇인지 묵상해 본다
-전문 (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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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파르티타 6번』에서/ 2022. 10. 20. <문학아카데미> 펴냄
* 김주혜/ 서울 출생, 1990년『민족과문학』으로 등단, 시집『때때로 산이 되어』『아버지별』『연꽃마을 별똥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