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 안정옥

검지 정숙자 2022. 10. 29. 01:54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

 

    안정옥

 

 

  거리에서 화려한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구두를 보면

  나는 부끄러워진다 많이

  그날은 붉은 구두를 사가지고 왔다

  이제 구두는 들어갈 곳이 없었다

  나는 구두에게 계속 관측당하고 있었다

  결정하기 힘들 때 검은 구두를 신고

  사람이 많은 곳에 나를 버리고 간다

  그 남자를 차단하고 싶으면 보라색 구두를 신고

  공원으로 간다

  내 자신이 한때 천박했음을 생각하면 주황색 구두를

  끌고 어슬렁거린다

  자꾸 아파오면 붉은 구두를 신고 아버지 집으로 간다

  아직 미정일 때 나는 노란 구두를 신고

  산에 앉아 시간을 본다

  전생에 사탄이 아니었을까 녹색 구두를 신고

  골목골목을 두리번거린다

  누군가 나를 치켜주면 흰 구두를 신고 거리로 나선다

  거리는 콤플렉스의 광장

  크고 작고 몸 어딘가에

  가시 하나 감추고

  데리고 끼고 끌고 엎고 찔리고

  뒤집으면 있다 보인다

  낮달처럼 있다 나는

  아직도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있다

  누가 볼까봐 어제도 새 구두를 신고

  오늘도 새 구두를 산다

  나는 화려한 구두를 보면 여기저기 아프다

  집으로 가고 싶다

    -전문-

 

  시인의 말> 전문: 첫 시집과 다시 부딪치는 일은/ 그떄의 몸에 늙은 몸을 우그려 넣어본다는 것// 나를 교활하게 사용하기만 해왔으니/ 그런 내가 처음과 다시 마주하는 건/ 조금이라도 만회할 기회를 얻어내려는 의도//  시작은 늘 그럴듯하다./ 나머지도 비슷하게 갈 수 있으리라는 다짐,/ 그걸 오래 잃지 않으려 첫 시집 그대로/ 손대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니까// 억지로 표현하자면, "첫"이라는 모든 상황은/ 내겐 늘 부대끼지만 마음으로 치면/ 제법 대물大物이다.

2000년 9월 

안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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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개정판)에서/ 2022. 10. 3. <문학동네_포에지> 펴냄

  * 안정옥/ 1990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나는 독을 가졌네』『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웃는 산』『아마도』『헤로인』『내 이름을 그대가 읽을 날』『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연애의 위대함에 대하여』『다시 돌아나올 때의 참담함』 /  * 블로그 주: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초판_1993.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