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눈 한 번 깜빡/ 이성수

검지 정숙자 2022. 10. 27. 02:56

 

    눈 한 번 깜빡

 

    이성수

 

 

  엄마는 당신이 살아온  날을 소설로 쓰면 몇십 권은 될 거라면서도 눈 한 번 깜빡하니까 머리가 하얗더라는

 

  되도 않는 역설을 자주 말씀하셨다, 꽃이 핀다

 

  하긴 엄마  뱃속에서 내가 태어난 것도 황홀한 인연인데 엄마가 한평생 한 번 깜빡인 눈은 얼마나 이 생이 아름다울까, 꽃이 나부낀다는 것은 꽃이 진다는 말인데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한 생이 지나고 또 다른 생을 맞는다

 

  엄마가 쓴 이번 생 이야기 읽어보려고 엄마가 서 있던 자리에서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는데

  왜 계절은 저만큼 먼저 꽃을 내던지는지 다시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죽음의 다른 말은 사망死亡입니다. 법률적 용어지만, 전통적인 개념의 사와 망은 좀 차이가 있습니다. 는 죽은 직후부터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은 장례를 치른 이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명칭도 사자死者와 망자亡者로 구분해 쓰지요. 하긴 명칭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죽는데 말입니다.

 

   (···)

 

  "눈 한 번 깜빡"이면 봄 지나 겨울이 됩니다. 가을의 자리에 서서 "엄마가 쓴 이번 생 이야기 읽어보려고 엄마가 서 있던 자리에서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무리 슬퍼도 밥은 먹어야겠지요. "날도 더운데 우리 막걸리 한 잔"(「하하하, 아버지)」해야겠지요. 우리는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한 생이 지나고 또 다른 생을 맞"습니다. (p. 시 45/ 론 156 (···) 157)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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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눈 한 번 깜빡』에서/ 1판 1쇄 2022. 5. 8_1판 2쇄 2022. 9. 13. <북인> 펴냄  

 * 이성수/ 1964년 서울 출생, 1991년『시와시학』 제1회 신인 공모를 통해 등단, 시집『그대에게 가는 길을 잃다, 추억처럼』, <빈터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