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파문 외 1편/ 한영숙(전남)

검지 정숙자 2022. 10. 7. 01:39

 

    파문 외 1편

 

    한영숙(전남)

 

 

  수면이 반짝인다

 

  바람결에 잘린 빛들이 물 위에 구르고

 

  미루나무는 하늘을 들어 올린다

 

  내 안의 침묵은 제 길을 찾아 날아간다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물결 위로

 

  당신이 파문을 일으킨다

 

  풀 끝에 이술방울로 맺힌 표정과

 

  물방울들은 하늘의 구름 되어

 

  이리저리 흘러갈 것이다

 

  수면 위에 일렁이는 얼굴이 있다

      -전문(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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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랍의 일상

 

 

  서랍 속에는 기억들이 산다

 

  문을 열면 칸칸마다

  두려움과 샘물과 포스트잇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있다

 

  풍미가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신 날이 기록되어 있다

 

  그날의 아픈 만남이

  낙서가 되어 서랍에 산다

 

  역류하던 피톨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면

  지나온 날들 한낱 거품 같다

 

  서랍의 궤도를 따라 지구가 돈다

      -전문(p.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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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허공 층층』에서/ 2022. 9. 7. <상상인> 펴냄 

   * 한영숙/ 2021년『문예마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