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어떤 여행/ 백순옥

검지 정숙자 2022. 9. 29. 02:01

 

    어떤 여행

 

    백순옥

 

 

  출발을 기다리는 뗏목이다

  생전 처음 해를 향해 누워

  둥둥 물살을 떠도는 잉어 한 마리

 

  방죽 버드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오후 햇살이 지느러미 닮은 돛 하나

  흰 주검 위로 펼쳐 준다

 

  실뭉치 풀어놓은 비릿한 소문에

  물고기들 모여들고

  부리 검은 새들도 몰려온다

 

  햇빛이 촘촘히 엮은 늑골 뼈를 발라 먹는다

  물거울 넘실넘실

  폭우 속 진흙탕의 기억을 지우고

  새끼들 찾아 물풀을 헤집던 날도 지운다

 

  둑 너머로 비늘무늬 바람이 지나간다

  달빛 둥글게 휘감아 수를 놓던

  그림자 한 채 환하게 흘러간다

 

  물결의 지도 빙 빙 빙 수없이 맴 돈 후에야

  깊게 잠겨 있는 방죽

  태곳적 어둠이 문을 연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잉어의 육신은 "햇빛"에 의해 "발라"지고 몸이 사라지면서 "폭우 속 진흙탕의 기억"과 "새끼들 찾아 물풀을 헤집던 날도" 지워진다. 잉어 한 마리가 여기 살았었다는, 살다 갔다는 흔적을 백순옥의 시는 "둑 너머로 비늘무늬 바람이 지나"가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바람에 비늘무늬가 아로새겨진 모습이 잉어가 살았었다는 흔적인 셈이다. "달빛 둥글게 휘감아 수를 놓던/ 그림자 한 채 환하게 흘러"가며 "비늘무늬 바람"이 된 "잉어 한 마리"가 살았던 날들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죽음 이후에 가는 곳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라고 볼 수 있다. (p. 시 18-19/ 론 121) (이경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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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비늘무늬 바람』에서/  2022. 9.10. <파란> 펴냄  

 * 백순옥/ 강원 동해시 출생, 2011년『딩아돌하』로 등단, 시집『깊어지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