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소나기가 지난 뒤 외 1편/ 구재기
검지 정숙자
2022. 9. 28. 00:20
소나기가 지난 뒤 외 1편
구재기
지렁이 한 마리
한길로 나와
말라 죽어 있었는데
한참 후에
되돌아와 보니
사라지고 없어졌다
바람이
우듬지에
한참이나 지났는데
바람은 떨어진 잎에
머물지 아니하고
보이지도 아니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애초부터
지상에 남겨진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전문(p. 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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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들
아내는
크고 작은 그릇을
아침 햇살 아래
펼쳐놓았다
한낮이 지난 다음
아내는 다시
물기 마른 그릇을
거두기 시작했다
가장 큰 그릇 속에
작은 그릇을, 작은 그릇 속에
더 작은 그릇을······· 차츰 작아지는 그릇이
크기에 따라 안겨지자
가장 나아중
포근히 안긴
제일로 작은 그릇 속에
햇살 가득 넘치도록 담겼다
-전문(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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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일로 작은 그릇』에서/ 2020. 5. 4. <시작> 펴냄
* 구재기/ 충남 서천 출생, 1978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시선집『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