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옥_다시 읽어보는 세계의 명시집(中)/ 성회 수요일 : T.S. 엘리엇
성회 수요일
T.S. 엘리엇(1888-1965, 77세)
1
나는 다시는 돌이키기를 바라지 않기에
나는 바라지 않기에
나는 돌이키기를 바라지 않기에
나는 이 사람의 재능과 저 사람의 능력을 탐하면서
나는 더 이상 그런 것을 얻고자 애쓰지 않는다
(왜 늙은 독수리는 날개를 펼쳐야 하나?)
왜 나는 늘 지배하던
힘이 사라졌다고 애통해야 하는가?
나는 긍정적인 시간의 허무한 영광을
다시는 알고 싶지 않기에
나는 생각하지 않기에
나는 하나의 진실한 덧없는 권력을 모를 것이라 알고 있기에
나는 나무가 꽃피고, 샘물이 흐르는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없어
다시는 마실 수 없기에
나는 시간은 항상 시간이며
장소는 항상 그리고 오직 장소일 뿐임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현실적인 것은 오직 한때
그리고 한 장소에서만 현실적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사물들이 있는 그대로임을 기뻐하고
축복된 얼굴을 포기하며
그 목소리를 단념한다.
나는 다시는 돌이키기를 바랄 수 없기에
결국 나는 기뻐한다. 기뻐할 그 무엇을
세워야만 하기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내가 내 자신과 너무 많이 토론하고 너무 많이 설명한
이 문제들을 잊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
나는 다시는 돌이키기를 바라지 않기에
이 말들이 이루어졌으나 다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응답이 되게 하고
심판이 우리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도록 하소서
이 날개들은 더 이상 날으는 날개가 아니며
단지 대기를 치는 날개이기에
지금은 가장 희박하고 건조한 대기가
의지보다 더 희박하고 더 건조한 대기이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서 무관심하도록 가르치소서
우리가 조용히 앉아 있도록 가르치소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지금 그리고 우리의 죽음의 시간에 기도하소서
지금 그리고 죽음의 시간에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소서.
-전문-
▶T.S. 엘리엇 시편(발췌) _김명옥/ 시인, 문학평론가
1930년에 쓰여진 『성회 수요일』은 텅 빈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자아自我 방기放棄의 용기를 가진 자의 종교적 탐색을 그 주제로 다룬다. 영적으로 황폐한 지금까지의 자아를 버리고 회개와 염원의 기도로 절대자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나는 매일 죽노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자기를 죽이는 고행의 길이다. 그러기에 이 시에는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적인 자아에서 벗어나 기도와 간구로 절대자를 찾는 과정 속에서 겪는 정신적 갈등이 명상적 맥락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6부로 구성된 『성회 수요일』의 제1부는 세속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기쁨을 찾아나서는 화자의 결의와 그 이유가 기도와 함께 전달된다. 우선 그는 신과의 합일을 위해 지금까지 집착했던 이기적인 욕망을 포기하게 된 이유와 결심을 반복하는 부사절로 전달한다.
그러나 그러한 결심에도 불구하고 날개를 펼치는 늙은 독수리처럼 현세의 활동과 세속적인 욕망을 쉽게 단념할 수 없다. 화자의 세상적인 미련은 의문문과 부정문 그리고 반복되는 '···까닭에(because)'의 역설적 표현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세상적인 부귀영화와 덧없는 세상적 전력을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으며 시간의 순환 속에서 꽃피는 삶의 터전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곳임을 알고 있기에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셋째 구절에서 화자는 시간과 공간에 구속된 1회적 삶이 한계를 깨닫고서 지금까지 얽매었던 '축복된 얼굴'과 '목소리'를 버리고자 하며 대신 새로운 것을 구축하게 된 기쁨을 고백한 후 신이 도움과 자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신을 찾는 상황에서 현세의 활동 수단인 '날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 대신 조용히 앉아 필요한 관심을 갖고 불필요한 관심을 버리는 신앙적인 훈련을 배우고자 한다. 자신을 '죄인'이라 부르는 화자는 '지금'이 바로 자신을 영적으로 소생시키는 육신적 죽음의 시간임을 알고서 기도해달라는 겸허의 기도를 드린다. 특히 이 시에서 동일한 어휘들을 반복하면서 주제를 발전시키는 문체는 일정한 생각에 집중적으로 얽매어 맴도는 종교적 명상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p. 시 150-151/ 론 129-130) / (현대시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중에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애독자를 위해 세계의 명시집을 리바이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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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사』2022년 여름(110)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리바이벌/ 다시 읽어보는 세계의 명시집> 에서
* 『시사사』 2003년 9_10월호에서 재수록(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