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카를교/ 권기만
검지 정숙자
2022. 9. 20. 02:18
카를교
권기만
천문시계가 설산을 열어 10시 정각에 닿자
천국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된 카를교
십이 사도가 성자의 행적을 걸어
행인의 발을 빌려 가야 할 곳에 내린다
나를 걸어서 그가 지나간 날이다
건널 수 없는 것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을 때
나를 건너 저녁으로 가는 그의 눈빛이
프라하를 노래한 종소리처럼 내 안에 고인다
걸어가다가 멈춰 서면 다리가 되는 이상한 집중
몸에서 바이올린이 걸어 나온다
물결은 입을 오물거려 귀를 간질이고
그림에서 걸어 나온 여자가 물감을 흩뿌리며 지나간다
다리가 된 임산부와 군인이 다리가
된 줄도 모르는 아이와 강아지를 바라본다
난간에 기댄 종탑이 뒤뚱거리며 걸어간다
-전문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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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2-8월(642)호 <시> 에서
* 권기만/ 2012년 『시산맥』으로 등단, 시집 『발 달린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