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굴참나무 슬하/ 김미연

검지 정숙자 2022. 9. 16. 02:03

 

    굴참나무 슬하

 

    김미연

 

 

  굴참나무 아래

  작은 도토리 한 알 엎드려 있다

 

  두근거리며 참아낸 시간은

  숲의 시간

  씨앗에서 한 그루 나무가 되기까지

 

  그가 만나야 할 하늘은 몇 겹일까

 

  몸을 찢고 나온 하얀 실뿌리

  흙냄새를 맡으며

  어둠을 찾아 내려보내고 있다

 

  가장 낮은 곳

  어둠 속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천척을 피해 숨은 곳

  세상을 향한 첫발을 낙엽 더미에 숨기고  있다

 

  지나가는 발소리에도

  작은 심장이 두근거린다

 

  굴참나무 슬하에 봄이 꿈틀거리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굴참나무 슬하'라는 제목의 뜻이 참으로 정겹다. '슬하'란 "부모의 무릎 아래"라는 뜻에서 전이되어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굴참나무는 부모요 떨어진 도토리는 자식으로 본 것이니 인간적 정감의 따스함이 시행에 스며 있다. 굴참나무 아래 엎드린 작은 도토리 한 알에서 뿌리가 내리고 싹이 터서 한 그루 나무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하늘이 몇 겹 바뀌는 세월이 필요하다. 작은 도토리는 천적을 피해 낙엽 더미에 숨어 있다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어둠 속에 혹독한 추위를 견딘다. 생명의 줄기를 지키기 위해 숨을 죽이고 지나가는 발소리에도 작은 심장이 두근거린다, 흙냄새를 맡으며 하얀 실뿌리를 깊은 땅 속으로 내려보낸다. 봄이 오면 세상을 향해 여린 싹을 첫 발로 내딛고 생명의 대지를 향해 전진한다. 이렇게 시간을 견디면 작고 여린 싹이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굴참나무는 절이 없지만 많은 도토리를 열여 발 아래 떨어뜨렸으니 "슬하에 봄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말해도 좋은 것이다. 굴참나무는 생명을 낳고 키우는 부모로 상정하고 거기 떨어진 도톨이를 자식으로 여겨 성장을 기원하는 마음을 '슬하' 라는 울림으로 표현헸다. 시인의 생명 의식과 미래에 대한 소망이 충실하게 형상화된 작품이다. (p. 시 83/ 론 125-126) (이숭원/ 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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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그 이름은 저녁』에서/  2022. 8. 15. <미네르바> 펴냄  

* 김미연/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