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정거장 없는 기차 외 1편/ 배한봉

검지 정숙자 2022. 9. 9. 02:58

 

    정거장 없는 기차 외 1편

 

    배한봉

 

 

  그는 '문학의 전당' 대표였고, '시인시각' 발행인이었다.

 

  아니, 다른 그 무엇보다 그는

  정거장 없는 기차였다. 정거장이 없어 멈추어 본 적 없는 시의 기차였던 그가

 

  정말 그대로 질주해버렸다. 언덕 너머, 경계 없는 시의 나라로, 수줍은 듯 가만히, 얼굴에 담고 있던 미소를 한 장 사진 속에 가둬놓고

 

  가버렸다. 기적도 울리지 않고, 마흔 여덟

  짧은 일생을 꿀꺽 삼킨, 소실점을 향해 두 가닥 철로를 새벽이 되밟으며 돌아오고 있었다.

 

  시인 김충규!

 

  저 너머는 어떠하냐.

 

  우리 사는 이 세상 정거장의 봄볕은 참 무장무장 눈부시게 환하다. 뚝뚝, 덩어리째 꽃 모가지 떨어지는 동백만 붉어

  왈칵! 눈물 더 복받치는 서러운 3월.

      -전문 (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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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거리는 얼굴

 

 

  머리 없는 사람이 있다.

  머리도 없이

  경주 남산에, 가부좌로, 천년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골짜기 오르는 사람들을 담담히 바라보는

  풍화된 몸만 가진 사람이 있다.

 

  몇 번이나 목 잘리고도

  얼굴이 있어서 얼굴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

  다시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고

  그 이력서 품에 안고 아직도 잘릴 목 남았는지

  머리 없는 목 위에

  가만히 얼굴 얹어 확인해보는

  사람 닮은 돌사람,

 

  얼굴 없어서 얼굴 없어서 표정 보이지 않아도 되는 돌사람,

  머리 없는 몸속에서 부처를 꺼낸

  돌사람을 뒤에 두고

  그 돌사람을 뒤에고

 

  파리한 얼굴 덜컹거리며 남산 골짜기 오르는 한낮.

 

  목 위에 붙어 아직도 덜컹거리는 파리한 얼굴의 한낮.

      -전문 (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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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육탁』에서/ 2022. 2. 15. <여우난골> 펴냄 

  * 배한봉/ 경남 함안 출생, 1998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주남지의 새들』『복사꽃 아래 천년』(소월시문학상 수상),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악기점』『우포늪 왁새』『黑鳥』, 「우포늪 왁새」(고등학교 교과서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