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동주/ 이유정

검지 정숙자 2022. 9. 3. 02:31

 

    동주

 

    이유정  

 

 

  먹구름이 부푼 배를 걷어안고 몰려왔다

  종일 산통을 겪던 비구름이

  드디어 해산하듯 비를 쏟아낸다

  잡념을 씻어내는 젖은 음계에 갇힌 채

  빛바랜 시집을 뒤적인다

 

  빗속을 뚫고 걸어오는 사람

  어느새 집 앞에 와 문을 두드린다

  진지하게 만난 적 없는 당신과 내가

  캐모마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적막함을 마시며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주절대는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당신은 뜨거웠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회오리바람이 몰아친다

  거친 시공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가 놓아준다

  촘촘하고 무거운 신념이 너무 아파 허우적거린다

  그의 전신에 오얏나무가 새겨지며

  모호한 상징이 꽃으로 피어난다

  부끄럽지 않은 당신의 짧은 생이

  누추한 내앞에서 하허을 벗어 버린다

 

  비는 잠시 소강 중

  마트리카리아 한 무더기 창가에서 두런거릴 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데리고

  투명한 혼이 걸어나간다

    - 전문 (p.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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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2-9월(643)호 < 시>에서

  * 이유정/ 2017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사랑은 아라베스크 무늬로 일렁인다』, 동시집『사라진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