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저기 무심이 지나간다 외 1편/ 김미경
검지 정숙자
2022. 8. 31. 02:30
저기 무심이 지나간다 외 1편
김미경
어둑한 현관문을 열고 불을 켜니
큼지막한 막대기 하나 스윽 지나간다
팔뚝을 스치는 소름
어둠을 찾아 서성이는 지네 한 마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화장지 몇 장 찢어 변기 속에 넣어버렸다
징그러움을 가장한 재빠른 손놀림
화장지를 수의로 입고 변기 물에 내려간다
순식간에 저질러진 살생
무심코 한 행동에 괴로워할 만큼
여유롭지 않은 생의 한가운데
화장실을 나오다
뒷머리가 쭈뼛한 것은
괴로움일까 죄책감일까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울음처럼 들린다
-전문 (p.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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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동백이라고 적는다
세상의 모든 가지가 잎을 키울 때
속울음으로 제 몸을 터뜨리는 꽃
달을 담기도 전에
붉은 눈물 흘리며
울음 튼 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뚝, 뚝
몸을 내린 이곳은 어디인가
가지를 따라 잠시 멈추었을 뿐
흩어짐과 사라짐의 사이
그 사이를 비집는 동백이었던 흔적
가지 끝에 내려앉은 어둠이
붉은 허공이
한때의 씨앗을 버린 그녀를
휘감는다
울음이 걷힌다
-전문 (p.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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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그녀를 동백이라고 적는다』에서/ 2022. 7. 25. <상상인> 펴냄
* 김미경/ 충북 단양 출생, 2002년『문학공간』으로 등단, 시집『내 안의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