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 해 겨울밤/ 윤석산(尹錫山)

검지 정숙자 2022. 8. 26. 02:51

 

    그 해 겨울밤

 

    윤석산尹錫山

 

 

  1951년 겨울, 꽝꽝 언 한강을 타고

  한밤중 우리는 피난을 떠났다.

 

  아버지, 어머니, 큰형, 등에 업힌 어린 동생은

  턱밑까지 닥친 중공군을피해, 문수산 곱등고개를 넘어

  충청도로 다시 피난을 떠났고,

  험하디험한 산고개를 넘을 수 없는

  일흔여섯의 할머니와 다섯 살, 아홉 살, 열두살,

  우리는 그렇게 용인에 남겨졌다.

 

  엄동의 겨울, 견디지 못하시고

  그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전쟁의 한복판

  어린 손주들만 줄줄이 남겨두고

  아, 아 할머니,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칠십 년 전, 어느 몹시도 추운 겨울밤이었다

     -전문 (p. 71)

 

   ------------------

  * 『시와소금』 2022-가을(43)호 <신작시> 에서

  * 尹錫山/ 1974년⟪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햇살 기지개』외 다수, 저서『일하는 한울님』『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