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우물 외 1편/ 신영조

검지 정숙자 2022. 8. 25. 01:39

 

    우물 외 1편

 

    신영조

 

 

  공허의 기둥입니다

 

  실연을 잘라오는 자객이 숨어 있습니다

  당신을 향해 떠나던 물수제비가 남아 있습니다

  물수제비가 익어 환생한 시퍼런 눈망울입니다

 

  기도가 잠든 침묵입니다

 

  서늘한 인연의 꼬리가 떨어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끈에 매달린 저승줄 한 줄기 보았습니다

  허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물길을 보았습니다

 

  눈물의 종족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고요 속으로 떠난 당신 얼굴이 둥그렇게 떠오릅니다

  머물지 않던 고요가 드디어 자리 잡는 곳입니다

  멈추지 않는 밤이 빠져 있는 곳입니다

    -전문 (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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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믐

 

 

  밤이 말없이 다가오는 여인처럼 거룩한 순간

 

  멀고 먼 세상에서 온 난파선이 기울어져 있다

 

  문명 이전부터 진행된 희디흰 고독의 침몰

 

  어디로 비출지 모르는 희미한 전조등

 

  옆에 있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자정처럼

 

  옆구리에 비수 한 자루 품고 있는 저 고요

 

  답답할 때마다 자신의 살을 깎아 벅는 저 허기

 

  눈물을 조각하여 허공에 걸어둔다

 

  반복되는 장면으로 영역을 확보하는 삶과 죽음의 국경선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저 막막한 몸부림

    -전문 (p.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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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눈물을 조각하여 허공에 걸어두다』에서/ 2021. 19 30. <서정시학> 펴냄 

  * 신영조/ 경북 대구 출생, 2005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가마>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