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것들/ 장수철

검지 정숙자 2022. 8. 23. 17:06

 

    것들

 

    장수철

 

 

  죽음이 없는 곳

  평화로운 시대의 시체공시소에서처럼

  어느 날 죽음에게 관통당한 얼굴들을 보았다

  이곳은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는 이교도의 성지

  과잉된 식욕의 순례자들이 머무는 외딴 여인숙

  균일한 밀도의 적막이 대정전의 밤처럼 칸칸이 고이고

  마지막 칼날의 각도를 기억하는 정육들과

  유기되거나 잠정 보류된 정욕들

 

  문을 열면

  부화하지 못한 삼십구 판란이 함께 순장된

  어느 지하 사원의 비릿한 불빛 아래 공시되는

  사후강직이 끝난 무연고의 시간들

 

  죽음이 없는 곳에만 평화가 있다는 것을

  죽어서야 비로소 아는 것들

 

  부채꼴로 생을 찬미하던 케이크 조각은 형체를 잃고 무너져 있다

  생일초를 꽂았던 등쪽이 욱신거린다

 

  죽음이 없는 곳에만 고통이 없다는 걸

  죽어서야 아는 저

  것들

    -전문(p. 72- 73)

 

   ------------------------------

  * 『시에』 2022-가을(67)호 <시에 시>  에서

  * 장수철/ 충북 옥천 출생, 2009년『우리시』로 등단, 시집『낭만적 루프탑과 고딕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