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신동재_The courage to write a poem*/ 적 : 이장욱

검지 정숙자 2022. 8. 22. 16:29

 

   

 

    이장욱

 

 

  진정한 적은 내 안에 있다······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왜냐하면 그건 신비로운 말일 뿐만 아니라

  바보 같은 말이기 때문에

 

  한때는 바보처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아니다. 그 새끼는

  인간도 아니야.

 

  적과 동지를 나누는 것만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말한 파시스트가 있었지.

  그이는 진정한 철학자였어.

 

  오늘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림자를 생산하고

  어제를 생산하고 또 사악한

  적은

 

  나는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림자처럼 나를 미행하는 분이시여, 등 뒤의 악령이시여, 나의 아름다운

  피조물이시여,

 

  당신이 나에게 삶의 의미를 준다.

  나에게 의욕을 준다.

  나를 재구성한다.

  당신이 그러하다는 것에 대해 당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목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창밖의 하늘을 보아요. 불안정한 대기와 함께 다가오는

  구름에 가까운

  저 전체주의적 크리처들을

  눈앞에 보이는 것을 향해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를 때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라고 야훼는 말씀하셨지.

  우리가 심연을 바라보면 심연도

  우리를 바라보듯이

 

  친구여, 우리는 피를 흘리며

  헤어집시다. 먼 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로 해요. 언젠가는 간결한

  부고를 전해주어요.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없는 심연에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전문, 『창작과비평』(2022-여름호)

 

 

   The courage to write a poem*(발췌)/ _신동재/ 시인

  이장욱의 작품은 "모든 것을 무릅쓰는 이미지"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내 모든 것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차마 마주할 수 없는 "적"에 대하여 노래하기 때문이다. (···) 화자는 "내 안에 있"는 "적"을 운운하는 말들에 대해 "신비"롭고 "바보 같은" 말이라고 직격하고 있다. 그에게 "적"이란 "나에게 삶의 의미"와 "의욕"을 주고 "나를 재구성"하는 불가결한 존재이다.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것을 향해"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는 행위를 통해 "피를 흘리"게 된 존재는 "적"이 아닌 '나 자신'이다. 그렇기에 "적"과 "나"는 서로 "안부를" 물으며 "부고"까지 전하게 된다. 이렇듯 "적"에서 "나"를 보는 이 방식이야말로 기장 용기 있게 "모든 것을 무릅"쓰고 또한 그러한 이미지를 가능케 하는 방식일지 모른다. 화자는 적에게서 나를 보고 또 나에게서 적을 보면서 꿋꿋이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화자 앞에 펼쳐진 메마른 현실은 "적"이다. 그러나 그 "적"은 외부에 실재하는 "적"들의 얼굴에서 발견한 '나'이다. (p. 시 244-246/ 론 257-258)

 

   * 폴 탈리히의 『존재의 용기』 원제 「The courage to be」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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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2-7월(391)호 <현장성/ 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을 읽고> 에서

  * 신동재/ 시인, 2021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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