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갇힌 자유 4_걷는 사람/ 서경온

검지 정숙자 2022. 8. 22. 01:42

 

    갇힌 자유 4

        걷는 사람

 

    서경온

 

 

  멈출 수 없네

  걷고 또 걸어 텅  빈 마음이

  생각으로 가득찬  몸 풀어줄 때까지

 

  걸어도 걸어도

  발자국 흔적없이 지워져버리니

  이 길의 끝까지 가보려 하네

 

  지그시 핏물 배어나오는 하늘 밑

  잔물결 파도 소리 아랑곳없이

  죽은 듯 누워있는 귀먹은 바다

 

  가없는그물에 갇힌 넋들이

  점점이 흰 물새 되어 허공중에

  가뭇없이 사라질 때까지

 

  쓰러질 듯 휘청거려도

  사로잡힌 꿈의 보행

  멈출 수 없네.

     -전문-

 

  해설> 한 문장: 에스키모들은 슬프거나 화날 때 눈밭을 일직선으로 걷는다고 한다. 걷다가 마음이 풀리면 그 자리에 막대기를 꽂아 놓고 돌아본다고 한다. 그가 걸어온 거리는 그의 마음에 있던 슬픔이나 화가 어느 정도 크기였는지 보여준다.

  이 시에서 시인은 에스키모처럼 걷는다. 무언가 복잡한 마음을 안고서,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걷는다. 시인이 걷는 곳은 바닷가이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그만큼씩 마음도 풀려야 할 텐데, 걸어도 걸어도 상한 마음이 그대로이다. 2연 "걸어도 걸어도/ 발자국 흔적 없이 지워져버리니"는 그런 사정을 나타낸다. 발자국이 지워지는 것은 파도 때문인데, 파도가 발자국을 자꾸 지우는 통에 시인의 걸음 걸음(즉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은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이어지는 "이 길의 끝까지 가보려 하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 옮기기를 계속하며 마음 다스리려 애쓰는 시인의 의지를 보여준다. " 이 길"이 의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바닷가 길이지만, 그것은 시인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p 시 18-19/ 론 137) (홍기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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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하늘의 물감』에서/ 2022. 7. 7. <현대시학사> 펴냄 

  * 서경온/ 1956년 충북 제천 출생, 198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별빛 등불 하나』『슬픈 임금님을 위하여』『벌 서는 반장』『흰 꽃도 푸르다』, 시선집『당신이 없을 때의 당신』,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