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봄 외 1편/ 김은숙

검지 정숙자 2022. 8. 21. 02:42

 

    외 1편

 

    김은숙

 

 

  바람이 찬데 광장을 뛰어다니던 아이가 입을 벌리고 바람을 먹는다

 

  내가 바람을 먹어요

  시원해요

  아이스크림 같아요

 

  아이가 벌린 입안으로 광장을 휘돌던 바람이

  눈 섞인 바람이

  하얗게 몰려 들어간다

  사각사각

  바람을 씹는 아이의 입에서

  흰 꽃 몇 점 쏟아진다 지상에 닿지 못한 눈송이처럼

  혀에서 녹아 흘러나온

  이이스크림처럼

  입을 벌리고뛰어다니는

  아이의 몸에서

  봄이

 

  하얗게

  광장으로  쏟아지고  있다

 

  녹으며

  녹으며

 

  아이가 소년으로 소년이 어른으로 흘러내린다    

    -전문 (p.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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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희 지니

 

 

  우리 집 한쪽 벽엔 사각으로 된 그림 액자와 유난히 분침이 긴 원형 시계와 잎이 동전처럼 생긴 금전수 화분이 있고

 

  이 모든 아이들의 수다를 듣는 똑똑한 지니가 있지

 

  액자와 시계가 서로의 모양을 두고 다퉈도 시계와 금전수가 서로 더 둥글다고 싸워도 못 들은 척 비밀을 발설한 적 없던 지니

 

  어느 날 내가 친구와 정치 얘기를 했다

 

  목소리가 커졌을 때

  "싸움은 말이나 힘으로 이기려는 다툼"입니다

  누굴까? 무시하고 대화의 볼륨을 더 켰는데

  "싸움은 다툼입니다 보고 싶은 프로를 말씀해주세요" 한다

 

  인공지능 지니는  알고 있었다

 

  액자와 시계가 다퉈도 괜찮지만

  시계와 금전수가 싸워도 괜찮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소리를 지니는 듣고 있었다 액자와 시계와 화분 사이에 앉아 진희처럼 사람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문 (p.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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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히키코모리를 위한 변명』에서/ 2022. 6. 29. <시산맥사> 펴냄 

  * 김은숙/ 전북 진안 출생, 2014년 『문학시대』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