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필사/ 김솜

검지 정숙자 2022. 8. 18. 02:09

 

    필사

 

    김솜

 

 

  거주이전했습니다

  낯도 익히지 않은 낯선 곳

 

  시의 숲과 바람과 노래를 복제했으니

  이것은 내 것이 될 수 있을까요

 

  부러진 꿈의 뼈를 이어붙이는 문장처럼

  책을 폅니다

  시공을 넘나드는 가장 간단한 대화법

 

  책 속의 그는 젊습니다

  요절이 의심됩니다

  깊은 속내를 내가 먼저 들킵니다

 

  한번은 죽어야 부활하는 문장처럼

  그와 밀착합니다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탄식하며

  족적 위에 족적을 포갭니다

 

  오늘밤 나는 그와 함께 뒹굴 수 있는

  타다 남은 심지가 됩니다

 

  검은 잉크를 구름처럼 많이 주세요

  슬픈 비가 되어 문장 속으로

  뛰어들겠습니다

 

  젖은 숲은 소리 내어 울겠지요

  필사적으로 불러낸 그와 함께 밤새 숲길을 걷겠습니다

 

  불현듯 새벽에 당도합니다

     -전문-   

 

   * 기형도「질투는 나의 힘」에서 차용

 

    ------------------

  * 『시와소금』 2022-가을(43)호 <신작시> 에서

  * 김솜/ 2022년 『열린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