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꽃밥 외 1편/ 성선경

검지 정숙자 2022. 8. 16. 02:38

 

    꽃밥 외 1편

 

    성선경

 

 

  모든 밥은 꽃밥이다

  꽃이 피지 않았는데 어찌 열매를 맺으며

  맺지 않은 열매가 어찌 밥이 되랴

  혹 어떤 사람들은

  밥 위에 꽃잎을 얹어 그 밥만

  꽃밥이라 칭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모든 밥은 다 꽃밥이다

  한 톨 한 톨 알곡이 되기까지

  꽃이 피어서야 드디어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밥솥에서 뜨거운 김을 뿜는 이 시간

  어찌 그 모든 밥이 꽃밥이 아니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뜨거운 이 한 숟가락

  그 모든  밥은 다 꽃밥이다.

     -전문(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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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불, 등 외 1편

 

 

  우리 집 골목에는 가로등을 끄는 요정이 있어

  아침 신문이 배달될 때쯤이면

  찰칵, 가로등을 끄지

  내가 막 저녁 식사를 끝내고

  옥상에 올라 별점을 치는 순간

  찰칵, 가로등을 켜듯이

  나는 늘 가로등을 켜는 요정을 기다렸으나

  요정은 늘 내가 잠시 넋을 놓는 시간에 다녀가지

  살면서 우리가 늘 세상이 어두워 길을 잃었을 때

  무릎을 꿇고 등불을 켜는 요정이 나타나기를 빌지

  그때마다 어디선가 등불을 켜는 요정이 나타나

  반짝, 하고

  우리 앞에 환한 등불을 켜고는

  그림자도 없이 요정은 사라지지

  그래서 나는 늘 요정의 그림자도 볼 수 없지만

  저 환한 등불이 요정의 그림자라 생각하지

  내 그림자와 요정의 그림자는 서로 달라

  내 그림자는 어둡고 요정의 그림자는 밝지

  오늘 아침에도 그래,

  내가 아침잠을 털고 일어나

  테라스로 나가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할 때

  잠시 내가 한눈을 팔았다 싶을 때

  찰칵, 가로등을 끄는 요정이 다녀갔지

      -전문(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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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햇살거울장난』에서/ 2022. 7. 20. <파란> 펴냄

  * 성선경/ 1960년 경남 창녕 출생,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널뛰는 직녀에게』『옛사랑을 읽다』『몽유도원을 사다』『모란으로 가는 길』『진경산수』『봄, 풋가지行』『서른 살의 박봉 씨』『석간산문을 읽는 명태 씨』『파랑은 어디서 왔나』『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갈 때』『아이야 저시 솜사탕 하나 집어 줄까?』『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 시조집『장수하늘소』, 시선집『돌아갈 수  없는 숲』, 시작에세이집『뿔 달린 낙타를 타고』『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았다』, 산문집 『물칸나를 생각함』, 동요집『똥뫼산에 사는 여우』(작곡 서영수), 고산문학대상, 산해원문화상, 경남문학상, 마산시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