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시인수첩/ 김병호

검지 정숙자 2022. 8. 14. 03:04

 

    시인수첩

 

    김병호

 

 

  내게 붙은 귀신은 정이  많아서

  매일매일 밤이 알약처럼 환하지

 

  달이 백 개 있어도

  모두 문 닫은 텅 빈 거리

 

  길가  눈먼 돌멩이에게 비는 마음

  낭떠러지 시커먼 파도에 비는 마음쯤은

  그때 버려야 했을까

 

  세상의 공손은 모난 무릎 밑에 고이고

  애쓴 마음은 독이 되고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울음보다 비참에 가까이 가는 일

 

  아주 낡고 더러운 소문들처럼

  지붕 위 귀신들과 다정해지는 일

 

  아프지 않고 두렵지 않고 기꺼이

  남은 삶을 독으로 살아야만 하는 일

 

  오늘도 숨을 데가 없어

  불현듯 생을 빠져나갈 수 없는 밤

 

  철이나 홍이나 현이나

  멀지 않은 이름의 귀신들이, 그래서

  더욱  정다운 밤

     - 전문(p.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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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학』 2022. 7-8월(608)호 <신작시> 에서

   * 김병호/ 2003년 ⟪문화일보⟫ 당선, 시집『달 안을 걷다』『밤새 이상을 읽다』『백핸드 발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