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땅 세 평 외 1편/ 한영수

검지 정숙자 2022. 8. 13. 02:10

                             

    땅 세 평 외 1편

 

    한영수       

 

 

  대장, 좋은 생각이 났어요 가지고 있는 책들을 한곳에 모아 불을 질러 버립시다

 

  조르바의 생각이 아니더라도 

  책 무덤이 필요하다

 

  내게도 천장 높이 짊어진 아파트 벽돌이로 세우고도 남은 어깨에도 걸리고 발에도 채는 아침에도 새끼발가락이 부딪혀 멍든

  책 더미가 있어

 

  한곳 땅이 필요하다

  저울에 달거나 쓰레기가 아닌 예의를 갖추어 화장하고 죽은 것들이 꽃을 피워

 

  뭔가를 좀 알게 되는

 

  한 평은 작고

  세 평쯤 욕망해도 큰 잘못은 아니겠지

 

  재를 묻은 세 평 땅에 방울토마토를 심으리

  방울방울 안팎이 붉어 산들바람에 흔들리다가 거센 비보라에 몸부림도 쳐 보는 자유

 

  하지만 영영 작별이 그리 쉽나

  한곳 땅이 없어 차라리 다행인가

      -전문 (p. 94-95)

 

   * 대장, 좋은 생각이 났어요. 가지고 있는 책들을 한곳에 모아 불을 질러 버립시다. 그러면 뭔가를 좀 알게 되지 않을까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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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 카인의 죄

 

 

  바로 그때 폭발소 저유소에 대해

  타 버린 휘발유 260만 리터에 대해 43억 원 손실에 대해

  17시간 동안 화염과 검은 연기와 공포에 휩싸인 도시에 대해

  경찰의 손가락은 스리랑카인을 가리켰다

 

  카인의 아들인 죄

  스리랑카에서 태어난 죄

  이국의 노동자가 된 죄

  한번 살아 보자 풍등을 날려 보자

  터널 공사장에서 새벽부터 일한 죄

  그날은 인근 초등학교에서 '아버지 캠프'가 열리고 지난밤 풍등을 띄우고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본 죄 그때 하필

  달무리는 아내를 낳고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는 아들을 낳고

  그래, 나도 멋진 아버지가 되어 보자

  우리도 한번 풍등을 날려 보자

  밤하늘을, 어둠을

  제대로 한번 날려 버리자

  풍등을 쫓아간 죄

  풍등 하나를 주운 죄

  풍등을 날린 죄

  꿈을 꾼 죄

  꿈이 얼마나 비싼지 모르고

  둥실 떠오른 죄

     -전문 (p.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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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피어도 되겠습니까』에서/ 2022. 8. 1. <파란> 펴냄

  * 한영수/ 전북 남원 출생, 2010년『서정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시집『케냐의 장미』『꽃의 좌표』『눈송이에 방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