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들/ 홍수연
숟가락들
홍수연
아빠는 안방 장식장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눈가에 매일 늘어나는 주름살 이 주름을 나는 아빠가 나를 용서한 탓으로 돌린다 죽어서 하루하루 철이 드는 탓으로 돌린다 아름다운 주름, 하마터면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쓸 뻔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만 사용하던 안방 화장실 문이 열렸다 아빠의 화장실은 이렇게 생겼었구나 영정사진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들은 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고, 우리들은 여전히 즐겁고 여전히 행복하다
아빠의 심장이 멎자 해피엔딩 상조회에서 해피한 음식을 삶고 굽고 죽음은 향불처럼 일사천리로 전송되었다 올해 구순인 아빠의 죽음은 호상으로 분류되었다 발 빠르게 장례식장 복도를 꽃으로 장식하는 근조화환, 막 끓여낸 음식들 맛있어, 맛있어- 바삐 움직이는 숟가락 숟가락들
아빠, 마음에 들어? 일사불란한 장례식, 67년 전 혼례식보다 융숭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가 등 뒤에서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지도 않았고 귀신이 되어 나타나지도 않았고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지도 않았다
다만 집이 조금 커진 듯했고 아빠의 토할 것 같은, 가래 뱉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엄마는 매일 밤 아빠 몸 씻기는 노동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뿐이었다 삶은 계속되었다 가끔씩, 나는, 살아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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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인』 2022-07월(4)호 <시-움>에서
* 홍수연/ 2018년 『모던포엠』으로 등단, 시집『즐거운 바깥』『당신을 사랑할 겨를도 없이』, 대담집『비의 왼쪽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