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근_아무도 묻지 않아도···(발췌)/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 양문규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양문규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산과 산 사이로 구름이 낮게 흘러가고
바람 속을 종소리 대신
소똥 묻은 새가 울고 간다
스님은 심장을 드러내고 계곡물 소리를 듣는다
서로 가는 것을 묻지 않고
길이 끝나는 곳으로부터
소리들이 되돌아와 발 디디는 곳마다
종을 울린다
물은 흘러가는 것을 묻지 않고 계속 흐른다
마음 속의 觀音
종소리 아닌 종이 운다
절 밖
아름드리 은행나무,
큰 울음
나뭇등걸 속에 내장한 채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다
-전문-
▶ 아무도 묻지 않아도 은행나무는 안다/ - 영동군 영국사 원각국사탑비(발췌) _김덕근/ 시인
길이 멈추는 곳에서 소리가 돌아와 발 딛는 층층이 종을 울립니다. 아니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게 됩니다. 종소리 아닌 소리를 어찌 들을 수 있을까요. 영국사에서는 종소리 아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생의 소리를 관한다는 듣는 것이 아닌 보는 거지요. 어려울 때 찾은 이름이 관세음보살의 관음입니다. 중생의 괴로움을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관할 수 있는 곳,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은행나무의 큰 울음을 볼 수 있기에 범종이 있거나 없거나 묻지 않습니다. 하늘의 소리 땅 소리가 허공에 울림으로 업장 소멸을 하고 있습니다.
덕소 스남 또한 큰 어른이시기에 본래의 자리인 영국사 골짜기로 사람들을 호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더 침잠하라 하는 듯합니다. 천태산은 그냥 배경과 장소가 아닌 세심히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하고 깊어지라 합니다. 그러함에도 더 높이 더 빨리 걷는 것은 내 안의 우주를 만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영국사 은행나무가 '순간'을 놓지 말라고 연둣빛 나무보다 더 느리게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순정해지려는 천태산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요. 영국사 은행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p. 시 235-236 / 론 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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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2-여름(63)호 <청풍명월의 심상자리 14)> 에서
* 김덕근/ 충북 청주 출생, 『충북작가』 편집위원, 작품집『공중에 갇히다』품집『공중에 갇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