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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평설 3부 : 이송희

바다가 전하는 안부(부분)      이송희/ 시인    '바다'를 소재로 한 군산시인포럼의 시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과거의 바다는 초록 생명이 움트는 곳이었고 뭇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출렁이는 곳이었으며, 유년의 푸른 기운이 살아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그 바다가 기후 재난은 물론 핵 처리 오염수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들로 참혹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지만, 시집 속 시들은 한결같이 바다를 품고 수평선 너머의 시간을 꿈꾼다. 이러한 과정에서 누군가는 바다의 병든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또 누군가는 우리가 다녀왔을 발자국을 따라가 보기도 한다. 이 모두는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상생과 치유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을 살아내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바다'라는 공간이 인류의 생명과 직결되는 삶의 근원으로서..

권두언 2024.07.28

손/ 윤정희

손     윤정희    곱지 않은 손이 부끄러워  숨기려고만 했다   우심방 좌심방 흘러내린 수맥은  木 火 土 金 水 月丘와 平原을 돌아  五岳의 봉우리에 대를 이은 지문이 맺혀   흐르다 불거진 산맥은  내 엄마 고단한 한생이 쌓인 굽은 잔등이   씨줄 낱 줄 난맥처럼 엉긴  골진 무늬는 제 살 파먹고 사는 게  인생이더라고 쓴웃음으로  퉁치던 내 아버지 얼굴   눈썰미 좋은 내손 횃불 하나 밝히질 못해  느릅나무껍질 같은  내 세월 읽다 보면 입안에 가시가 돋아  위로처럼 손톱 위에 돋 새긴 꽃들  가끔 별들의 입술이 머물다 갔지   솟았다 허물어진 산맥  갈기를 세운 사나운 바람에  나래가 꺾여도 돋아나는 맥박들  기도를 배우지 못한 손안에도  골골이 수맥은 돌아  새 움이 터지는 내 영혼의 눈 ..

아픔/ 문화인

아픔     문화인    길을 잃었나   내 앞에 굴러온   빨간  사과 한 알   어디서 온 줄도 모르는데   꽃이  어떻게 진 줄도 모르는데   아스라이  붉은 노을 한 섬   저리 흐르고 있다    -전문(p. 120) ---------------* 군산시인포럼 제4집『바다의 메일』에서/ 2024. 6. 5.펴냄  * 문화인/ 2012년 『한국시』로 & 2024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언젠가』

이슬/ 나채형

이슬     나채형    초록빛 들녘 오길에  시간을 다듬어 사색을 좋아했어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세 잎에 맺힌 맑은 아침  영롱하게 피어있던  토끼풀꽃 되었지   창가에 온종일 햇빛 먹은 카라  어둠이 차오르면 밤새워   생명의 눈망울  온 잎에 고귀하게 끌어안고   넘겨지는 숫자의  건반 따라  맑은 선율을 남기고 있어   또 하나의  가을을 보내기 위해서···    -전문(p. 110)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나채형/ 202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사막의 보트 타기』

서산 삼존 마애불/ 김충래

서산 삼존 마애불      김충래    울 수 없게 태어나서  우는 방법을 모르지만  울지 않아도 삼키는 눈물  묵묵히 슬픔을 참는다   보는 중생마다  온화한 백제의 미소라 일컬어  흥망사에도 태연했지만  조금씩 망가지는 세월에  찡그릴 수 없어 웃는다   속이 시커멓게 멍들어도  미소만 띠며 천오백 년을  서 있는 탐진치의 삼존불   속울음 들을 수 있는 부처를  기다리며 또다시 천 년  맨몸으로 삼매경에 들지만  문드러지는 눈 코 입  풍경 속에서 내 몸도 웃음을 잃은  마애불로 가고 있다     -전문(p. 104)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김충래/ 2022년『미네르바』로 등단

차영이의 칠월/ 김차영

차영이의 칠월      김차영    해 질 녘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 위에 둘러앉아 별을 먹던 시간이  절룩이며 걸어온다   마당 한쪽에 가마솥 걸어 놓고  사자라리 전갈자리 북극곰의 꼬리별까지  모두 잡아 솥 안에 넣는 어머니   허기진 배 부여잡고  배부른 달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키던  달의 살점을 한 움큼 베어내  질그릇 같은 손 그림자로  우주의 성찬을 짓던 어머니가  별이 되어 먼 행성으로 떠난   칠월이 오면  별빛이 살 속에 그리움으로  파고들어  그 슬픔 더욱 단단해지는    -전문(p. 96)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김차영/ 2021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미이라의 숲』

한 사람/ 이서란

한 사람      이서란    책 한 권을 읽는데  족히 십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겉표지에 난 수많은 칼자국  제목의 글씨는 상처로 얼룩져  어떤 글자였는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버릴 수 없는 애정 어린 책     서로에게 스며들기 위해 뒤척이던 시절  서로를 몰라 마구 찔러대기만 했지  언제부터였을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펴 들고   다가서면 심장을 찌르는 통증  알았습니다. 우리는 혈통이 다른 족속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경청하는  방식으로  해진 책 한 권을 건너갑니다     -전문(p. 89)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이서란/ 2021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별숲에 들다』

파리목숨/ 조병태

파리목숨      조병태    허기진 파리 한 마리  주위를 살피면서 식탁 위에 내려앉는다.   숨을 죽이고 살그머니 일어나  파리채를 가져왔다.   정조준하고 내리치려는 순간  자신의 죽음을 눈치챘는지, 서둘러  공손한 태도로 소곳이 앉아  두 손 모아 싹싹 빌며  목숨을 구걸한다.   측은지심*을 가지고  생사를 신중하게 결정하려는 순간  고개를 두어 번 갸우뚱거리더니  죽음의 활주로를 가볍에 이륙한다.   구명의 애원을  자비심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감사하며 떠나는가?   나에게도  결정적인 운명의  절박한 순간이 닥쳐온다면  얌전히 무릎 꿇고  두 손 싹싹 빌어 볼 거나.    -전문(p. 192-193)     * 측은지심: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

코카서스의 밤/ 박소원

코카서스의 밤      박소원    나의 숙소는 넓은 창문을 열면 설산을 향해 있다  자정 무렵 어둠 속 달을 따라  가파른 산등성이에 시선을 올려두고  나는 희디흰 눈雪이 쌓인 추위를 가슴에 올려둔다  내 룸메이트는 이상하게 생각할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눈사람,  아직도 나는 추위에 약한 두 눈이 큰 겁 많은 소녀다  분명 우리는  어느 기차역 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높은 난간에 서서 오른쪽 발을 허공으로 떨어뜨리던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 하나,  녹아가며 추락하는 눈 코 입 희미한 미소  전쟁의 밤을 뚫고,  달빛이 내 방으로 여름 눈雪을 짊어지고 오고 있다     -전문(p. 150) -------------* 『미래시학』 2024-여름(49)호 에서 * 박소원..

아름다운 나라/ 김창범

아름다운 나라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기리며      김창범    해방된 줄 알았더니  남북으로 찢겨져 싸운 지 80년  핏줄끼리 죽이고 또 죽여 원수 된 나라  이 나라 세운 대통령도 내쫓은 나라  어, 그럴수록 더 그리운 나라   이 땅에는 언제나 해방이 오려나,  언제쯤 통일이 오고 평화가 오려는가  철따라 비바람 몰아치고 눈보라 쏟아지니  압록강은 언제나 풀릴런가   동포여, 두려워 말고 달려가자  내 나라는 어딘가, 남의 땅에서 쓸쓸히  마지막 밤을 지새운 이승만을 만나러 가자  이 나라를 보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자   이 나라 주권을 찾아주고  백성에게 자유를 안겨준 대통령,  이승만을 이젠 우리가 지키러 가자  한성감옥이 무너져라 외치던 그 정신  하늘이 가르쳐준 독립정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