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3373

정과리_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3(부분)/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 김종삼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김종삼(1921-1984, 63세)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어머니의 배     ㅅ속에서도  보이었던  세례를 받던 그 해였던  보기에 쉬웠던  추억의 나라입니다.   누구나,  모진 서름을 잊는 이로서,  오시어도 좋은 너무  오래되어 응결되었으므로  구속이란 죄를 면치 못하는  이라면 오시어도 좋은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그것을,  씻기우기 위한 누구의 힘도  될 수 없는  깊은  빛깔이 되어 꽃피어 있는  시절을 거치어 오실수만 있으면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이 됩니다.   오동나무가  많은 부락입니다.   수요 많은 지난 날짜들을  잊고 사는 이들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가 포함한 그리움의  잊어지지 않는 날짜를 한번   추려주시는..

오형엽_모티프, 인유, 몽타주, 알레고리(발췌)/ 사육제의 나날 : 신동옥

사육제의 나날     신동옥    당분간은 당신의 죄악을 노끈으로 동여매 집밖으로 내놓으십시오.  쥐들이 돌아가는 길마다 슬픔이 창궐합니다.   쓰러진 자들을 짓밟고 춤추며 교회당으로 몰려가는 무리를 보십시오.  새벽입니다. 손을 맞잡고 이마를 맞대고 육식에 힘쓰는 시간입니다.   마지막 날  이윽고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빛이 스미겠지요.  누구고 이 성스러운 병病의 벽을 깨부술 수는 없습니다.    -전문(첫 시집『악공, 아나키스트 기타』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p-13/ 문학동네, 2021.)   ▶모티프, 인유, 몽타주, 알레고리/ 신동옥 시의 미학적 방법론上 (발췌)_오형엽/ 문학평론가  이 시는 첫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의 서시로서 '죄/회개' 모티프를 중심으로 신동옥 시 세계의 기본..

청담 순호의 마음 이해와 정화 인식(부분)/ 고영섭

청담 순호의 마음 이해와 정화 인식(부분)         『청담대종사전서』 (전11권)를 중심으로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前略)   그러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심층마음인 아리야식과 표층의식인 자아의식과 분별의식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자아의식과 분별의식은 어떻게 심층마음으로 귀결되는가? 이처럼 마음의 지형에 대한 정의와 의미에 대한 물음은 불교의 근본적인 물음이 된다.   이후 출가자임에도 불구하고 모친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본문 p-128, '각주 11)'에도 상세 설명) 파계한 것을 깊이 참회하기 위해 금강산 비로선원에서 3년간 피눈물 나는 정진을 거듭하였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 산,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운수행각을 한 지도 벌써 십..

환절기/ 윤여건

환절기     윤여건    매미가 운다. 사방팔방 외치는 소리 아니라 몇 남지 않은 여름날의 마지막 방아쇠. 엷은 구름강 위로 떠간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풀벌레 소리. 밤도 아닌 한낮에 그것도 떼 지어 부르는 긴 꼬리의 화살표들    환절기.   풀꽃 향 번져 오는 내 마음의 여울목. 길고 길었던 불안과 고요의 어느 중간쯤 아, 가을이 빈 배 타고 오나보다.    -전문(p. 49)  -------------------  * 『현대시』 2024-7월(415)호 에서  *  윤여건/ 2008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

북녘 집/ 홍신선

북녘 집     홍신선    이거이 피란 나올 때 문단속했던 우리집 대문 쇠때다.  자물통에 딱 맞을 거이디  잘 간직해야디 다시 고향에 돌아가면 필요할 기구만   경도 치매를 앓는  다소곳이 늙은 그녀가 낡은 장롱 밑바닥서 건져 올린  녹 붉게 슬고 절반은 삭은  고리에 꿴 열쇠 하나  그러나 칠십 몇 년  전 두고 온 북녘 집에는  무슨 세상이  괴물이 다 된 무슨 일월日月이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전문(p. 21)   -------------------  * 『현대시』 2024-7월(415)호 에서  * 홍신선/ 1965년 『시문학』으로 등단

추모-시) 쥐/ 김광림

추모>     쥐     김광림(1929-2024, 95세)    하나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지요  야음을 타고  살살 파괴하고  잽싸게 약탈하고  병폐를 마구 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백주에까지 설치고 다니는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사방에서 갉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신 헐뜯고  야단치는 소란이 만발해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세상을  살고 싶도록 죽고 싶어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이러다간  나모 모르는  어느 사이에  교활한 이빨과  얄미운 눈깔을 한  쥐가 되어가겠지요  하나님  정말입니다   -전문, (『현대시』 2004. 7월호)  ■ 김광림 시인이 2024년 6월 9일 타계했다. 향년 95세.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했다. 忠男이 ..

구름이 들려주는 시 외 1편/ 정우림

구름이 들려주는 시 외 1편      정우림    초원에서는 구름이 말을 한다지 그 말귀를 잘 알아들은 말과 양 떼가 그 노래를 따라 부른다지 야크는 천천히 걸으면서 읊조린다지 눈 속에서 꽃대를 밀어낸 에델바이스가 여름의 눈썹으로 피어난다지 그렇게 천천히 푸른 풀밭을 산책하며 건너간다지 짧은 여름이 온다지 구름이 말을 건네면 풀을 뜯는다지 향기 나는 꽃은 먹지 않는다지 오물거리는 입가에 향기가 묻어난다지 구름은 어린아이 발자국을 따라간다지 바람의 손을 잡고 오래 기다린다지 밤에는 별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그러다가 울기도 한다지 구름의 틈 사이로 번개를 치고 비를 쏟아 낸다지 아주 멀리서 다가온다지 구름은 초원을 어루만진다지 때론 빠르게 때론 무섭게 두드리다가 초원이 깜짝 놀라 길을 내고 강을 만들게 한다..

펜로즈 삼각형/ 정우림

펜로즈 삼각형      정우림    표정이 자주 흔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바늘에 걸린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찌를 던지고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떨림   물의 심장이 되어 출렁이는 구름   수면의 셔터가 번쩍,   그늘이 없는 감정의 마디가 휘청인다   물의 각이 어긋날 때 물고기와   잠시,   만났다   헤어진다   수면이 찰랑   메아리 번져 간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펜로즈 삼각형'은 이와 같은 정우림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응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오브제라고 할 수 있다. 에셔의 판화 그림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대로, 펜로즈 삼각형은 3차원의 현실에서는 성립이 불가능한 구조를 오히려 평면의 2차원에서 구현한 것을 대표한다. 이는 2차원에 그려져 있지만 3차원의 공간 개념을..

심은섭_공空과 색色의 동일성 증명(발췌)/ 어느 날/ 권현수

어느 날      권현수    내가 버린 하루를  공차기하는 너   지나가는 바람결에  마른 대이파리 흩날린다   5월인데    -전문-   ▶공空과 색色의 동일성 증명/ 선어禪語의 절제와 응축(발췌)_심은섭/ 시인 · 문학평론가  시는 문학적인 형식으로서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 중의 하나가 형식이나 내용을 절제된 언어와 압축된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어詩語의 여러 기능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함축적 의미를 지녀야 한다는 것도 일반적인 시론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시의 형식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향은 시류時流에 편승하는 특별한 경우이지만 형식이든 내용이든 함축이나 압축을 조건으로 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권현수 시인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

병(病) 속의 편지 외 1편/ 김건영

병病 속의 편지 외 1편     김건영    누군가 신호를 적어 놓았다 문제가 있습니다 몸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있다 기호를 받아들이면서 이별이 늘어나요 늘어납니다 잊어버린 것들이  아픈 사람이 가득하다 복도는 하얗다 꺼지지 않는다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은 잃어버릴 예정입니다 더 이상 골목에 불이 꺼진 창문을 세지 않는다 잠든 사람들과 빈집이 구분되지 않는다 병원病原이라 부를까    병상에서 쉬는 것은 몸속의 병이겠지 편안한 병 아픈 사람들은 속이 빈 것처럼 바람 소리를 낸다 병은 투명하고 단단하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을 꾹 닫고 있다 기호는 스스로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름을 알게 되면 나아지는 것이 있습니까 농담은 자주 미끄러진다 병 속의 편지를 아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