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개미 정숙자 나는 나를 기다린다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나 자신을 만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생성되고 소비되고 재가동 된다 내가 만날 수 없는 내가 없다면 내가 만날 수 있는 나도 없으리 가까스로 끌고 온 허리가 꼬여 더 더욱 멀어지고 검어지고 풀어지는 여삼추 아래 (나는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9.12
붕우유친 붕우유친 정숙자 그림자들 결속이 무한하다 어떤 그림자도 색깔 바꾸지 않는다 빛 없는 데 튀어나오지 않는다 본체가 죽은 뒤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본체를 빼앗지 않는다 다른 이의 본체와 그림자 사이 끼어들지 않는다 본체가 하찮을지라도 떠나지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6.05
유심(唯心) 유심(唯心) 정숙자 하나를 둘로 나누지 마옵고 둘을 하나로 보태지 마옵소서 몸 받을 제 하나인 것이 보태인들 무겁지 아니하며 나뉘일 제 소리 나지 않으오리까 더하지 않고 덜함 없음에 영혼의 고난 또한 없으오리다 님 오신 날 기려 합장하오니 하나를 둘로 나누지 마옵고 둘을 하나로..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5.28
산소발자국 산소발자국 정숙자 나무만큼만 서있다 가자 나무만큼만 그림자 뉘었다 가자 나무만큼만 가지 뻗고 열매 맺고 새 소리 품었다 가자 나무만큼만 태양 우러러 이슬방울 서 말 닷 말 쏘아 올리다 가자 나무만큼만 이 세상을 마시고 이 세상에게 산소 먹이다 가자 나무만큼만 바람에게 말 걸..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5.12
나비는 제가 읽을 한 권의 책을 제 몸에 지니고 태어난다 나비는 제가 읽을 한 권의 책을 제 몸에 지니고 태어난다 정숙자 침을 달면 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부리를 달면 곤충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발톱을 달면 토끼 다람쥐 놀릴 수 있을 것이다. 이빨을 달면 사슴 코끼리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갈라 진 혓바닥을 달면 천하무적이 될 수도 있을..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5.12
지구에선 지구전이다 지구에선 지구전이다 -유언시 정숙자 대신 누벼줄 수 없는 사막 낙타 한 마리 물려주지 못하는 비애 저 세상 가서도 눈에 밟힐, 내 아들아 딸아 창 밖을 내다보아라 하늘과 나무뿌리에 마지막 말 묻어두노니 사람보다 먼저 태어나, 사람보다 먼저 사람을 알고, 사람에게 다칠지라도 사람을 용서하며, 사람보다 오래 살아 한겨울에도 태양을 파는 그 서늘한 ‘식물정신’을 ----------------- *사화집:『시로 쓴 유언』에서 *2008.2월/좋은책터 굿글로벌 펴냄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3.04
동작대교 노을카페 동작대교 노을카페 정숙자 바람은 물보다 많은 것들을 씻어준다 커피 한잔 놔두고 바라보는 야경 별 틈에 매단 스피커에선 힙합풍의 노래가 꼬리를 문다 펄럭펄럭 치맛자락 부풀리는 마파람이 잡다한 근심들을 맑 게-맑게 다독거려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바람은 일체개고의 시작이며 진..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3.01
춘추전국시대 춘추전국시대 정숙자 넘겨도, 넘겨도 나오지 않는 게 있다 무엇이 빠져 밍밍한 걸까 스무 권 서른 권… 백 권을 펼쳐도 보이지 않는다 번쩍 찔리는 거 풍덩 빠뜨리는 거 찰싹 갈기는 거 쿵쿵쿵 스며드는 거 쨍그랑 정수리 까부수는 거 그런 거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거, 그 좋은 거 언제..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3.01
지음 지음 정숙자 티셔츠는 발언권이 없다. 그에게 기회를 줘야 될까 생각해 본 적도 없 다. 그런데 옷걸이에 빨아 넌 티셔츠가 문득 종소리를 푸는 게 아닌가. 하나를 풀면 또 하나가, 또 하나를 풀면 또 하나가, 또 하나를 풀면 또 하나가 한나절 내내 동심원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그 .. 그룹명/나의 근작시 201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