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 274

사라진 말들의 유해/ 정숙자

사라진 말들의 유해 정숙자 현장을 떠난 말들이 붓두껍 속에 고이는 걸까 침묵을 건넌 말들이 거기 머물러 씨앗이 된다는 걸까 어디선가 다친 말 묻어버린 말 쓰러진 말 바람 소리 날려보지도 못한 하늘, 곳곳에 뿌려진 타인의 말도 때로는 익명의 필묵에 맺혀 가만가만 익어간다는 것일까 살얼음을 끼고 창가에 당도한 아침 입 속에서, 어깨뼈에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의 생존의 빙벽 어떤 회로를 타고 창궐했는지 구밀복검(口蜜腹劍), 참으로 당돌한 팔매질이다 말을 떠나서는 말이 될 수 없는 말 '살아남은 자가 이기는 자다' 이런 말이 공공연한 주술이 된 지도 오래… 말없이도 말이 되던 말다운 말 어떤 말에도 파묻히지 아니하던 실다운 말 그리운 그리, 운 말들 사라지는데 슬픈 문장이 멀리서 온다 *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