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칼과 칼깃
故 장승욱(1961-2012, 51)
흔히 시나 노래에서는 날개를 나래라고 표현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래는 날개보다 더욱 부드럽고 가볍게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아예 나래를 '시에서 날개를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해 놓은 사전도 있다. 그렇다고 시를 쓸 때는 날개를 무조건 나래라고 써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나래는 어디까지나 비표준어이니까.
날개의 또 다른 이름인 바람칼은 표준어이면서도 나래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시적인 낱말이다. 새가 하늘을 날 때, 그 날개를 바람칼이라고 한다. 바람을 타고 바람과 놀며 바람을 가르는 바람칼, 그러므로 새가 날개를 접고 내려앉으면 칼이 칼집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더 이상 바람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형의 날아감으로 푸르게 살아 있는 날개, 그것이 바람칼이다. 그래서 새의 날개를 이루고 있는 빳빳하고 긴 깃을 칼깃이라고 한다.
깃은 새 날개에 달린 털, 즉 깃털을 말한다. 짐승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을 '깃들인다'고 하는데, 얼핏 보면 이 깃과 관계가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보금자리에는 새털같은 포근함이 있어야 할 테니까. 그러나 '깃들인다'고 할 때의 깃은 깃털이 아니라 외양간이나 마구간, 닭의 둥우리 같은 데에 까는 짚이나 마른 풀을 가리킨다. '깃들인다'는 '깃든다'로 잘못 쓰기가 쉬운데, 깃이 보금자리가 아니라 거기에 까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틀릴 일이 없을 것이다.
꽁지는 새의 꽁무니에 달린 길다란 것을 가리키는데, 특별히 꿩의 꽁지는 장목이라고 한다. 장목비는 장목을 모아서 만든 빗자루인데, 꿩을 몇 마리 잡아야 장목비 하나를 만들 수 있을까. 장끼전에 '장끼란 놈 거동 보소 콩 먹으러 들어갈 제 열두 장목 펼쳐 들고'라는 대목이 있는 것을 보면 꿩 한 마리에 꽁지가 열두 개나 되는 모양이니 꿩이 씨 마를까 걱정은 안 해도 될까. 그러고 보니 발갯깃도 꿩에서 나오는 물건이다. 죽은 꿩의 날개에서 뗴어 낸 깃을 발갯깃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이것을 김을 쟁일 때에 기름을 찍어 바르는 데 썼다고 한다. 누군가가 산꿩을 길들여서 그런 일을 시켰더라면 꿩이 기름을 발라준 김을 먹었던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 부등깃은 갓난 새 새끼의 다 자라지 못한 여린 깃을 가리키는 말이다. (p. 21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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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반시』 2022 봄(119)호 <쉬어가는 페이지/ 시적 상상을 위한 도사리(9)>>에서
* 故 장승욱(1961-2012, 51세)/ 전남 강진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마쳤고, 스무 해 가까이 신문과 방송에서 기자로일했다. 이후 프리랜서 PD 겸 작가로 일하며 연출과 집필에 매달렸다. 토박이말로만 된 시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대학시절 도서관의 사전들을 뒤지며 토박이말 낱말들을 모아 1998년 토박이말 사전인
『한겨레말모이』를 냈다. 이후 『도사리와 말모이, 우리말의 모든 것』을 비롯한 우리말에 관한 책 여럿, 그밖에 시집 『술통』 등을 냈다. '우리말글 작가상' '한국어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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