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송가 중의 송가
고영섭
우리 한민족은 환국(환인)과 배달국(환웅)과 조선(단군)의 삼대와 전前삼한 그리고 후後삼한과 대부여/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국으로 이어왔다. 그리하여 우리의 배달족 즉 동이족은 상고의 삼대와 전후 삼한 그리고 고대 사국의 왕조를 거치면서 노래와 춤과 의례의 연희를 좋아했다. 이들 노래 중에서도 '신라가요'는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와 고구려의 「황조가」 및 백제의 「정읍사」와 가야의 「구지가」 그리고 고려의 「동동」 등과 달리 '향가鄕歌' 즉 '국가國歌'로 불렸다. 아마도 '성城'이나 '진鎭' 이외의 곳까지 널리 불린 전국구의 '향가'였기에 '국가'로 불렸을 것이다.
고대의 국가國歌 즉 '나라가요'였던 『시경詩經』처럼 신라의 가요집인 『삼대목(大矩 화상/魏弘, 각간)』이 편찬된 것은 백성들이 즐겨 부른 '국민가요'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신라인들은 향가를 숭상한 지 오래됐으니 대개 시詩와 송頌과 같은 것이다[羅人尙鄕歌者尙矣. 盖詩頌之類歟]. 이 때문에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킴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고 하였다.이처럼 때때로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시가'이자 '송가'였기에 '국가' 즉 '향가'라고 불렀을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향가 26수(14+11+<도이장가>포함)는 간간하고 절절함이 대상을 감동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간절한 기원이 '깊이 느껴져 마음이 움직이는'[感動] 것처럼 향가는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시가'이자 '송가'였을 것이다. 향가 시인인 월명사는 여동생 죽음에 즉하여 "삶과 죽음 갈림길/ 여기에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하고 가느냐./ 어느 이른 가을 바람 끝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새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 닦아 기다리리."(권상로 역)라는 절창을 남겼다.
향가는 우리 고대 시가와 송가의 절창이다. 월명사는 늘 사천왕사에 머물며 피리를 잘 불었다[明常居四天王寺, 善吹笛]. '일찍이 달밤에 문 앞 큰길을 피리를 불며 거닐자[嘗月夜吹門前大路] 달님이 그를 위해 운행을 멈추었다[月馭爲之停輪].' 피리를 잘 불었던 월명사의 달님에 대한 '간간함'과 '절절함'이 달님의 심금을 움직이게 하였던 것이다. 신라인들의 염원과 이상을 담았던 '월명사의 피리 소리' 같은 향가는 신라의 상대와 중대와 하대 가요의 골수로서 『삼대목』에 담겼으며 이 가요집은 그 시대의 안목이 되었다.
고전의 현대화와 현대의 고전화를 모색하고 있는 우리 <현대향가> 동인은 향가가 지닌 이러한 주술적 힘을 원용해 우리 시의 두께와 깊이를 더하고자 향가시회를 펼쳐가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4구체와 8구체와 10구체를 유지하면서 내용적으로는 고전과 현대, 현대와 고전을 소화하고 녹여내어 이 시대의 대중가요를 짓고자 한다. 독창의 '가歌'와 합창의 '요謠'가 만나 '가요'가 되듯이 퓨전과 융합의 시대에 고전과 현대, 현대와 고전이 퓨전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K 시가'가 되기를 염원해 본다.
우리 문학은 고대가요와 현대가요의 융합과 퓨전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 시문학의 대표 장르로서 시조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 동인은 우리 시의 두께를 두텁게 하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고대향가를 보다 현대화하고 현대향가를 더욱 고전화하고자 한다. 고전적 향가와 현대적 향가가 만나는 지점에서 'K 시가'는 더 두터워지고 깊어질 것이다. 우리 시의 두께와 깊이는 고전의 텃밭에 뿌리를 잇고 현대의 줄기에 접목을 해서 '현대의 고전'으로서 '오래된 미래'의 꽃을 피워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삼대목』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 (p.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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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가시회_현대향가 제4집『송가 중의 송가』에서/ 2021. 12. 1. <시산맥사> 펴냄
* 고영섭/ 1989년『시혁명』 & 1995년『시천지』로 작품 활동 시작, 1998~1999년『문학과창작』추천 완료, 시집『몸이라는 화두』『시절인연』(근간)등 다수, 평론집 『한 젊은 문학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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