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부분
우리 시, 어디쯤 가고 있는가?(부분)
임동윤/ 계간 『시와소금』 발행인
(전략)
이제 『시와소금』 창간 11년째를 맞이합니다. 지난 2년 사이 알게 모르게 몇 개의 문예지가 문을 닫았습니다. 시인에게 지속적인 발표의 기회를 주고 창작 동기와 소통의 기회를 부여하던 플랫폼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은 것입니다. 또한 신인상 등단 제도를 두어 좋은 시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도 그만큼 좁아졌습니다.
필자가 청년 시절엔 '시를 쓰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유행했지만 우리는 무슨 숙명처럼 시를 쓰곤 했습니다. 진작 밥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세상엔 끊임없이 시를 쓰는 젊은 시인들이 탄생했고, 그만큼 그들은 시에서 삶의 좌표를 찾아내고 영혼의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요즘 우리 시의 현주소를 어떤가요? 젊은이가 별로 없어서 무척 황량하다고 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 시는 젊은이로부터 외면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오로지 <돈>이 되는 방송드라마나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젊은이는 구름처럼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송작가를 양성하는 학원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저출산과 학령인구의 저하로 대학마다 문예창작학과가 인터넷 콘텐츠 학과와 통폐합하거나 아예 폐과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심지어 국립대학조차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아 통폐합의 아픔을 겪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작고한 유명 시인의 작품은 구름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시인의 작품도 잘 알려진 시인이라면 요즘 수십 편씩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낭송회 모임이라든가 시에 관심이 많은 동호인이 하나의 사이트를 만들어 함량 미달의 자작시를 올려 서로 즐기고 낭송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이로 펴낸 시집은 인기가 없습니다. 일부 유명 시인의 시집이 아니라면 잘 팔리지도 않습니다. 책이 팔려야 원고료도 주고 인세를 줄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지배했던 고고한(?) 시는 사라지고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 시는 읽을거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종이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가 바람 앞의 초라한 등불이 된 것일까요?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서 무척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예지를 발행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리 절망적인 것도 아닙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범람으로 종이책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하지만 해마다 시집은 당당하게 서점으로 몰려듭니다.
그나마 더욱 다행한 일은 장년층과 노년층이 시를 즐겨 읽고 노래하고 쓴다는 사실입니다. 살기에 급급했던 청년기와 중년기를 보내고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는 서점에서 나를 지키고 찾기 위해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문학을, 그중에서도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젊은 시인이 점차 사라지고 문단은 조금씩 고령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 신춘문예만 해도 그렇습니다. 신문에 보도된 운문 분야(시, 시조, 동시) 당선자를 보면, 나이를 밝히라고 한 몇 개 신문사를 제외하곤 20~30대의 젊은이보다 고령자가 많이 당선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본지 신인상에 응모한 분들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30~40대는 아예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간간이 10대나 20대에서 응모하기도 하는데, 그 응모작은 시라기보다는 그냥 낙서 정도의 작품 수준이었습니다. 응모한 분들이 대부분 50대와 60대입니다. 예전엔 40대 이상은 잘 뽑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젊은 시인을 뽑아서 육성한다는 취지에서였지요.
우리 시단은 점차 고령화되어 갑니다. 이젠 60대가 주축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한국시인협회에서는 20년 이상 활동하고 70세가 되면 회비를 면제해주던 정관을 고쳐서 누구나 회비를 내도록 했다고 합니다. 젊은 시인이 잘 영입되지 않아서 70세 이상 고령자에게 회비를 면제해주면 장차 협회의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우리 시단이 지금보다 젊어지는 방안은 없을까요? 날로 고령화되어가는 사회. 저출산에 맞물려 날로 시들해가는 우리의 시단. 이 어려운 문제를 우리 시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봄이 가기 전 함께 고민해야만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도 다행인 것은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것입니다. 시인과 독자의 고령화에도 문예지는 계속 발간되고 발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독자가 보고 싶은 문예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다시, 『시와소금』은 소망해봅니다.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에게 문학이 소중한 의미가 되기를요. 비록 발간비용이 많이 소요된다고 해도 시인과 독자가 좋아한다면, 그 문예지는 성공한 문예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봄, 더 새롭고, 보다 의미 있는 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단단힌 문예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시 전문 문예지로서 시의 위상과 진정성, 나아가 삶의 등불과 위로가 되고 그 어떤 힘듦을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불멸의 시혼을 발굴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시여, 시인이여, 독자들이여,
더욱 따뜻하게 비켜봐 주시고 더욱 많이 사랑해주시길 이 봄, 간곡히 소망해봅니다. (p. 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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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소금』 2022-봄(41)호 <소금의 말>에서
* 임동윤/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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